삼고초려(三顧草廬)

석 삼, 돌아볼 고, 풀 초, 초가집 려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초가집을 세 번 돌아보다는 뜻으로 유능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즉 훌륭한 인재를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말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로 모시는 과정에 얽힌 고사성어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요행으로 '서서'라는 출중한 인재를 얻었다. 그러나 조조의 계략에 걸려 헤어지게 되었다. '서서'가 이별의 자리에서 제갈량 공명을 추천한다,

 

유비는 서서를 보내자마자 즉시 예의를 갖추어 양양(襄陽) 어느 촌구석에 살고 있는 제갈량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에게는 그림자 같은 관우와 장비가 동행했음은 물론이다. 때는 마침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이었다.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고생고생하며 제갈량의 집에 겨우 도착했으나, 그는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낙심하여 돌아온 그들은 며칠 후에 다시 찾아갔다. 그렇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형님께서 다녀가셨고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가족으로부터 분명히 들었을 텐데, 와룡인지 뱀인지 하는 작자가 이토록 무례할 수 있단 말이오?” 성미 급하기로 유명한 장비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입이 무겁고 점잖은 관우 조차 노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유비는 두 아우를 잘 달래어 조용히 돌아왔다. 그런 다음 봄이 되기를 기다려 다시 제갈량을 찾아 나서려고 했다.

 

“형님은 그냥 계십시오. 내 당장 달려가서 이 무례한 서생 나부랭이 놈을 꿰차고 오리다.” 장비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펄쩍 뛰었고, 관우도 공연한 헛걸음하고 체면만 손상될 뿐이니 그만두자고 말렸다. 그런 두 아우를 나무라고 달래어 세 번째 방문했더니, 제갈량은 마침 집에 있었으나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당장 걷어차서 깨우려는 장비를 간신히 말려 놓고 제갈량이 깨어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제갈량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태도는 유비의 인물됨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초라한 자기 집에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의 끈기와 정성에 감복한 제갈량은 못 이긴 듯 돗자리를 걷어 차고 유비를 따라 나섰다. 천하의 군사 제갈량을 얻은 유비는 승승장구하였고 촉나라를 세워 조조, 손권과 더불어 삼국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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