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시집 모음

 

▶ 연애 시집 모음에 앞서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파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괴로웠다. 아니, 내가 더이상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정적이었다. 나는 창백하게 굳어 있는 팔을 뻗어 무엇인가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간신히 먼지 낀 고물 턴테이블의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어둠은 습한 공기를 가득 부풀리며 다가왔다. 이상한 넝쿨들이 내 온몸을 휘어감는 것 같았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바늘이 투욱, 검은 원반의 가장자리로 떨어지려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나는 턴테이블의 움직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습한 어둠의 공기들은 부풀어올라 내 숨통을 조이고 넝쿨가지들은 온몸의 곳곳을 휘어감으며 덮쳐왔다. 그 순간 턴테이블의 바늘은 원반의 가장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투욱 툭, 그 짧은 잡음을 시작으로 나는 정적의 중심으로부터 풀려났다. 

- 어느 날 어둔 불빛 앞에서, 김태형

 

 

리운 시냇가

 

내가 반 웃고

그대가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 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 장석남 -

 

그집 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기형도 -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는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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