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고사성어 사기(史記)

 

오늘의 고사성어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성어입니다. '가빈사양처'와 '계구우후'에 대한 뜻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家(집 가) 貧(가난할 빈) 思(생각할 사) 良(좋을 량) 妻(아내 처)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 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 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 가 적합합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 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 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 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 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 다. 家貧思良妻 나 國亂思良相 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 것을 뜻한다.

 

 

鷄口牛後(계구우후)

鷄(닭 계) 口(입 구) 牛(소 우) 後(뒤 후)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 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 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 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 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 고 하였습 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 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鷄口牛後 란 큰 집단의 말단보다는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낫다 는 것을 뜻 한다. 이제 대선(大選)이 가까워지면서 鷄口 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맛으로 치자면 꼬리곰탕 이 훨씬 나은 것을 말한다.

 

■ 오늘의 고사성어 명약관화(明若觀火)에 앞서

 

오늘의 고사성어는 어떤 일에 있어 불을 보듯히 매우 명백하다는 의미의 명약관화(明若觀火)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서로 거짓이 없고 매새에 분명해야 한다.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을 둘러대거나 변명한다면 스스로 상대와의 믿음을 깨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고 거북해진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문제는 어디를 가나 누군가를 속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접근해 온다고 가정해 보라. 분명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경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려면 나부터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자신이 투명한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 명약관화(明若觀火) 뜻

 

명약관화(明若觀火)

明 : 밝을 명, 若 : 같을 약, 觀 : 볼 관, 火 : 불 화


밝기가 불을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밝기가 마치 불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뚜렷해서 도무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너무도 뚜렷해서 삼척동자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자꾸 변명을 하거나 잡아 뗄 때 흔히 쓴다.

 

명약관화(明若觀火)와 같은 한자성어로는 명명백백(明明白白)이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명확하다는 뜻이다. "명약관화(명명백백)한 일을 가지고 발뺌을 하려 하다니" 등의 형태로 쓰인다.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신만 알고 남은 모르려니 생각하여 남을 속인다는 뜻의 속담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도 같은 말이다.

 

 

명약관화(明若觀火) 유래

 

기원전 14C경 상나라는 스무번째 임금인 반경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상나라는 분쟁이 일어나고 정치는 부패하여 매우 혼란스러웠다. 거기에다 자연 재해까지 발생하여 동요와 불안이 심해졌다. 반경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도읍은 은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였다.

 

그의 계획은 많은 대신들의 반대에 놓였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원하지 않았다. 반경은 근심하는 백성들에게 호소하며 맹세하였다. "앞선 임금께서는 일이 있으시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삼가셨으나, 그래도 언제나 편치 못하여 일정한 도읍을 갖지 못하고 지금껏 다섯 번이나 도읍을 옮겼다.

 

지금 옛일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늘이 명을 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덕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덕을 버리어 나 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불을 보듯이 잘 알고 있으나, 나도 성급히 일을 계획하여 그대들에게 허물이 되었다.

 

벼리가 있어야 그물이 풀어지지 않는 것과 같고, 농사꾼이 밭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풍성한 가을을 맞는 것과 같다. 결국 반경은 대신들과 백성들을 설득해서 도읍을 은으로 옮겼다. 이후 반경은 치세에 힘써 상나라를 부흥시켰고, 200년이 넘도록 도읍을 옮기지 않았다.

 

반경은 자신의 심정을 것짓 없이 분명히 설명하여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심어 주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도읍을 옮기는 계획을 성사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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