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 뜻과 청와대 십상시 문건에 앞서

 

십상시(十常侍) 뜻은 중국 후한 말기에 어린 황제를 조정한 부패 정치 내시집단의 환관 12명을 말합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한국의 신돈, 러시아 루시푸틴과 함께 종종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십상시(十常侍)는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심지어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제거하고 보는 후안무치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십상시 뜻과 이들이 일으킨 십상시(十常侍) 난에 대해 알아보고 정윤회 청와대 십상시 문건과 명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과거든 현재든 부패한 정치집단과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습니다.

 

■ 십상시(十常侍)의 뜻


십상시(十常侍)는 간신의 대명사이자 부패한 정치집단과 권력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들을 말합니다.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156~189) 때 조정을 장악했던 환관(宦官) 10여 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영제는 십상시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에 둔 채 거친 행동을 일삼아 제국을 쇠퇴시켜 결국 망하게 한 인물로 유명하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어린 황제가 즉위했을 때 외척과 환관이 정권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십상시는 넓은 봉토를 소유하고 정치를 장악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 부모형제들도 높은 관직을 얻어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후한 189년 8월 25일 발생한 십상시의 난에서 2000여 명의 환관이 죽으면서 동탁(董卓, ?~192)이 정권을 잡게 된다.

 

 <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각각 십상시를 12명, 10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름에도 차이가 난다. <후한서>의 기록에 따르면 십상시는 수장인 장양(張讓)을 비롯해 조충(趙忠), 하운(夏惲), 곽승(郭勝), 손장(孫璋), 필람(畢嵐), 율숭(栗嵩), 단규(段珪), 고망(高望), 장공(張恭), 한회(韓悝), 송전(宋典)이며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건석(蹇碩), 봉서(封諝), 장양(張讓), 단규(段珪), 후람(侯覽), 조절(曹節), 조충(趙忠), 곽승(郭勝), 하운(夏惲), 정광(程廣)이다.

 

십상시 뜻

 

■ 십상시의 난

 

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십상시들은 하태후의 명령을 위조해 하진을 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 하진은 결국 십상시들과 상방감 거목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에 하진이 죽자 하진의 부하 오광이 청쇄문 밖에 불을 질렀고 진군교위 조조와 사예교위 원소는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고 원소의 동생 원술도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취

 

화루 아래에서 조충, 정광, 하운, 곽승 등이 베이고 군사들은 십상시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으며 환관들도 모두 살해했는데 이 때문에 수염 없는 사람들도 환관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했다. 하진의 동생 하묘도 난입해 십상시 중 한 명이던 조충을 죽였으나 오광에게 가담자로 오해받아 살해당했고 하진을 살해했던 상방감 거목을 포함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락궁에서 살해당해 십상시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십상시들 중 남아있던 장양, 단규, 후람, 조절 하태후를 납치해 가려고 하나 중랑장 노식의 참여로 실패하며 결국 이들은 황제 소제와 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낙양 북망산으로 피신한다.

 

십상시의 난

 

■ 십상시의 난과 군웅할거 시대의 개막

 

장양과 단규는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하남 중부연리 민공의 습격을 받아 장양은 연못에 빠져 자결하고 단규, 후람, 조절은 소제와 유협을 잃어버려 뒤쫓아온 민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소제와 유협은 선비 최의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원소와 조조, 왕윤, 양표, 순우경, 조맹, 포신 등의 신하들을 만나 낙양으로 향한다. 이때 민지에 주둔하던 서량 자사 동탁이 사위 이유, 동생 동민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오고 동탁은 병권을 장악하여 원소를 발해 태수로 내쫓고 하진의 어머니 무양군을 비롯해 하씨 일족을 모두 멸족시키면서 하진을 죽게 했다는 혐의로 죽은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절단하여 길에다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리고 진류왕 유협을 황제로 세우려 들고 이에 병주 자사 정원이 양아들 여포를 내세워 동탁을 막으려 하지만 도리어 동탁의 부하인 중랑장 이숙의 음모로 양아들 여포에 의해 살해당하며 동탁은 반대하던 신하 정관을 죽이고 황제 유변과 하태후를 폐위시켜 살해했으며 진류왕 유협을 후한 14대 황제 헌제로 즉위시킨다. 이후 한나라는 반동탁연합군을 거쳐 군중할거 시대로 돌입하는데 하진의 며느리 윤(尹)씨는 이후 조조에게 재가하였으며 손자 하안도 어머니가 조조에게 재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조의 양자가 되었다.

 

 

■ 청와대 십상시 문건과 명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재 등장한 청와대 십상시 문건과 명단입니다. 언론 보도 등에 의하면 청와대 십상시 명단은 크게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원조 십상시 명단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있었던 보좌관 10명입니다. 즉 대선캠프 실무그룹을 말합니다. 정윤회 문건과 함께 등장하였으나 실상 정윤회는 이와 관련이 없다. 단지 이들보다도 더 실세였다 아니다, 문고리 3인방을 추천했다 등의 설만 있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실체보다는 설이되었다. 의혹은 있어되 실체 확인은 어려운거죠.

 

언론보도에 나타난 십상시 명단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음종환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 청와대 정무수석실, 홍보수석실 행정관 2명, 전직 행정관 2명, 대선 캠프 실무진 2명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언론보도와 뉴스 등에서도 십상시 명단의 실명을 알지만 명예훼손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정확히 밝히진 않았습니다. 단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는 실명을 공개 했습니다. 최근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스스로 십상시 명단의 이름을 밝히는 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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