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인물 홍길동과 허균의 홍길동전

 

▶ 홍길동전과 실존인물 홍길동

 

허균이 지은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이 '홍길동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문뜩 든 생각에 찾아보니 홍길동은 연산군대에 얼자의 신분으로 도적떼의 두령이 되어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실존인물이었다. 조선시대의 3대 도적 중 한명이다.

 

허균이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으로 홍길동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실존인물이든 소설속의 인물이든 홍길동은 의적으로 추앙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백성의 고단함, 권력자의 부패 및 부정, 그리고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조선의 3대 도적 : 장길산, 임꺽정, 홍길동

 

홍길동전

 

■ 실존인물 홍길동에 대해

 

▶ 시대적 배경

 

드라마에서 알 수 있듯이 배경은 성종에서 연산군 시기다. 이때 고관대작과 정쟁으로 혼란한 시기였으며 폭정과 부정부패가 일삼아졌다. 이에 백성은 견디지 못하고 도적떼가 되기도 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양반을 습격하기까지 했다. 이 때 가장 강성했던 도적떼의 두령이 바로 충청도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홍길동이다. 드라마상의 내용이 조금은 각색되었지만 크게 틀리지 않는 설정이다.

 

▶ 홍길동의 출신성분

 

홍길동은 본관이 남양으로 경성절제사를 지낸 홍상직의 아들이었다. 즉 홍상직은 관료출신임은 분명하다. 홍상직은 정처인 남평 문씨로부터 귀동(貴童)과 일동(逸童) 두 아들을 얻은 뒤 관기 출신의 비첩 옥영향으로부터 셋째아들 길동(吉童)을 얻었다. 그런데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도적 홍길동의 한자명은 길동(吉同)이라 양자가 실제로 동일인인지는 분명치 않다.

 

홍길동 호탕하고 대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정통 관료 가문의 후예였지만 조선의 강력한 신분제도에 따라 비천한 얼자로써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자 조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무리와 유랑민들을 끌어모아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드라마에서처럼 홍길동이 신화적인 존재는 아니였다.

 

▶ 홍길동의 최후

 

홍길동의 주요 근거지는 충청도 충주 일대였는데, 일반 도적들처럼 산 속에 근거지를 두지 않고 마음껏 여항을 활보하면서 위세를 떨쳤다. 당시 그는 사욕을 품은 관리와 이속을 포섭하여 각종 정보를 취합한 다음 조직적으로 강도짓을 일삼았다.

 

그가 정3품 당상관인 첨지중추부사 차림으로 무기를 소지한 채 무리를 이끌고 관가를 들락거렸지만 지방의 권농이나 이정, 유향소의 좌수, 별감 등이 감히 제어하지 못했다.

 

하지만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500년(연산군 6년) 10월 22일,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도적 홍길동의 체포 사실을 임금에게 고했다.

 

사실 홍길동에 대한 처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홍길동의 행위를 돕거나 방조한 고위관료들이 변방으로 귀향가거나 쫓겨났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홍길동이 사형당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 허균 홍길동전

 

▶ 소설 속의 홍길동

 

도적 홍길동이 관군에게 체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친 반면 소설 속의 의적 홍길동은 신분의 벽을 무너뜨리고 병조판서가 된 다음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으로 건너가 부귀영화를 누린다. 허균의 신념과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가상인물 홍길동의 생애는 실존인물과 틀렸다.

 

홍길동전 소설의 내용을 다 잘 아실거라 판단되어 마지막 결론만 정리하겠습니다. 무리를 이끌고 중국의 남경으로 가던 도중 경치가 수려한 율도국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두 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얼마 후 홍판서(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와 삼년상을 마친 그는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국왕이 되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

 

▶ 허균이 남긴 홍길동전 메세지

 

《홍길동전》은 16세기 이후 빈번했던 농민봉기와 함께 그들을 이끌던 주요 인물들의 다양한 설화를 바탕으로 탐관오리들의 수탈, 적서차별의 문제점 등 당대의 부조리한 세태를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담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민중들의 시도는 좌절되기 일쑤였지만 사람들은 소설 속에 나오는 홍길동의 성공신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허균은 이처럼 당대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의 개혁 사상을 《홍길동전》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던 것이다. 허균은 말년에 역모 혐의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고, 조선의 권력자들은 그를 왕조가 끝날 때까지 극악한 불온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홍길동전》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민중들에게 부당한 권력과 부조리한 제도에 감연히 맞서라고 소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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