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에 뜻과 유래에 앞서

 

우물안 개구리란 뜻으로 식견이 좁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세상이 넓은 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정저지와(井底之蛙) 또는 정중지와(井中之蛙)란 사자성어를 사용하곤합니다. 둘 다 같은 뜻과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 남의 말을 멀리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말만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발전하기가 어렵다. 편견은 편견을 낳을 뿐이다. 식견이 좁은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지금보다 나은 학문을 쌓을 수 없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 뜻

 

정저지와(井底之蛙)
井 우물 정, 底 밑 저, 이룰 지, 之 갈 지, 蛙 개구리 와

 

▶ 우물 밑의 개구리란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몹시 좁은 것을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정중지와(井中之蛙)
井 우물 정,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蛙 개구리 와

 

▶ 우물안 개구리란 뜻으로 세상(世上) 물정(物情)을 너무 모름을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莊子(장자)≫ 秋水篇(추수편)에 나오는 말이다.  ≪莊子(장자)≫에는 ‘井蛙(정와)’라고만 나와 있다. ‘井庭蛙(정정와), 井中蛙(정중와), 井底蛙(정저와), 井底之蛙(정저지와)’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 유래

 

<장자>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다. 황하의 신인 하백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와 동해를 보게 되었다. 바다의 크기와 넓이가 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백이 놀라워하며 북해의 신인 약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모르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다. 비뚤어진 선비가 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서야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대와 함께 천하의 진리를 논할만 하다. 보잘 것 없는 식견을 가진 사람도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춘다면 얼마든지 바다처럼 넓은 식견을 기를 수 있다.

 

 

 

<후한서> <미원열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신나라에 마원이란 자가 있었다. 마원은 관리가 된 세 형과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감숙성에 있는 외효의 밑으로 들어갔다. 당시 공손술은 촉에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있었다. 외효는 마원을 보내어 공손술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마원은 공손술과 같은 고향이어서 공손술이 반갑게 맞아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손술은 무장한 군사들을 죽 늘어놓고 서둘러 마원을 불러들였다. 공손술은 미원을 후에 봉하고 대장군의 직위를 내리려 했다. 마원은 잠시 생각했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공순술은 예를 다하여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신변만 꾸미는 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의 인재를 도래 두랴." 마원은 돌아와서 외효에게 말했다. " 공손술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좁은 촉나라 땅에서나 뽐내는 미미한 자입니다." 외효는 공손술과 함께 할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 친밀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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