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탄생석 자수정

 

▶ 보라빛의 맑고 투명한 2월 탄생석 자수정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함께 세계 5대 보석 중 하나입니다. 자수정 생산 1위는 브라질이지만, 뚜렷한 사계절의 기후와 미사황토 진흙에서 결정된 우리나라의 자수정이 품질면에서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자수정 다른 탄생석과 달리 신화와 연관이 있어 하늘과 인간을 잊는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2월 탄생석 자수정 유래(신화)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어느 날 인간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화가 난 디오니소스는 지금부터 누구든지 처음 마주치는 인간을 맹수에게 잡아먹히도록 하겠다고 결정하고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의 이름은 아메시스트로, 새하얀 옷을 입고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참배하러 가는 길이었다. 디오니소스가 소녀를 짐승의 먹이로 주려는 순간 그것을 눈치챈 아르테미스가 소녀를 하얀 수정으로 바꿔버린다. 소녀는 순식간에 조각상이 되었는데, 그 때 달빛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디오니소스는 감탄하며 결국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이후 디오니소스는 조각상이 된 소녀에게 애도의 의미로 붉은 포도주를 부었다고 전해진다. 포도주가 소녀의 몸을 물들이자 조각상은 아름다운 보라빛의 보석으로 변했고, 그것이 자수정(Amethyst)이었다는 전설이다.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자수정을 몸에 지니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반대로 자수정으로 만든 잔에 포도주를 마시면 술자리에서 재치를 잃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었다. 자수정은 술 뿐 아니라 독에도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이성을 찾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보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과거 서양에서는 자수정을 몸에 지니면 나쁜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차분하게 정화시켜준다고 생각했다.

 

■ 2월 탄생석 자수정 의미

 

2월 탄생석인 자수정은 현명함과 의지, 위엄과 권력을 상징하는 보석이다. 자수정의 영문 이름인 ‘아메시스트(Amethyst)’는, 그리스어 ‘아메시스토스(Amethystos)’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아메시스토스’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서 알아본 것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전해지는 자수정의 유래와 관련이 있다.

 

성실, 평화를 상징하는 자수정의 청색은 하늘을 뜻하고 붉은색은 사람의 피를 상징해 자수정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석’으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다량의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천연 자수정은 인체에 영향을 미쳐 저온에서도 다량의 노폐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체내의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켜 주는, 신비의 보석이다.

 

보라색이 귀족의 색으로 여겨지던 18세기 이전까지 자수정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과거에 보라색은 인공적으로 만들기 힘든 색으로,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만이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또한, 보라색이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색과 사람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 합쳐져 나온 색이기 때문에 보라색을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성한 색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연유를 포함해서인지 청명한 보랏빛을 띠는 자수정은 고귀한 돌로 인정받아 유럽의 기독교에서는 교회, 주교의 존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주교 반지에 세팅되기도 하였다.

 

또한 옛날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수정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한 자수정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침착해지며 영리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전염병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수정 산지였던 신라시대 장식물에서 자수정이 사용되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현재에는 육군 학사장교의 임관반지에 사용되기도 한다.

 

 

2월 탄생석 자수정 특징

 

▶ 자수정은 석영의 투명한 조립질 변종이다. 독특한 색상 때문에 수정 중에서는 황수정과 함께 보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자수정이 보라색을 띠는 것은 많은 산화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색에 가까운 옅은 보라색부터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붉은 빛깔의 자주색까지 있다. 자수정 중에서는 붉은 자주빛에 가까울수록 고급으로 평가된다.

울산에서 생산되는 언양 자수정은 세계 최상급으로, 다른 자수정에 비해 매우 검붉은 빛깔이 특징이다.  자수정은 브라질, 우루과이, 캐나다, 미국 등에서 산출된다.

지구 공동설이란?

 

지구 공동설은 지구 내부는 텅 비어 있고, 그 속에는 즉 지구 속에 또 다른 지구가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 내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니 MBC TV 서프라이즈 등과 같이 세계 미스테리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하는 소재입니다.

 

지구공동설의 발단은 1683년에 할리혜성이라는 이름을 남긴 할리가 제창한 설에 의한다고 하며, 그는 지구 내부에 각각 화성, 금성, 수성과 같은 크기의 내구(內球)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 지구 내 세계에 생물이 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하였으며, 북극에 보이는 오로라는 지하광이 새어나온 것으로 추측했다.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은 지구의 속이 비어 있으며, 양극(남극과 북극)에 그 비어 있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는 주장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하였으며, 각종 SF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구 속에 별천지가 있다는 주장과 우리 인류가 현재 비어 있는 지구 속에 살고 있다는 주장 등이 있다.

 

현재까지 과학적인 뒷바침이 부족해 과학자 대부분은 이 사실에 대해 부정적일뿐만 아니라 사이비(유사) 과학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가설이라고 하기엔 최근 비밀 문서 해제틀 통해 드러난 사실과 주장이 있어 점점 미스테리 사건화 되어 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구 공동설 미스테리

 

■ 지구 공동설 주장 과학자들의 공통점

 

현재까지는 가설이긴 하지만 지구 공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 북극과 남극에 지구 내부로 들어갈 수있는 큰 입구(구멍, 홀)이 존재한다.

  • 지구 안의 또 다른 문명 세계는 인류보다 훨씬 앞선 기술 문명을 가지고 있다.

  • 지구에서 이미 사라진 메머드와 같은 거대 동물들이 존재한다.

  • 이 문명을 방문하거나 경험(증명되지 않았다) 한 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 지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행성들도 그 내부는 텅 비어 있다.

 

 

 ■ 지구 공동성 주장 근거들

 

지구  공동설을 주장하는 다양한 근거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1997년 1월에 공개된 CIA 기밀 문서와 미 해군 제독 버드가 경험한 또 다른 지구 이야기와 최근 전 CIA 직원이었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세가지 주장과 근거는 지구 공동설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공개된 CIA 기밀 문서 : 미국과 러시아가 40여 년간 군사 목적으로 수집한 북극해 관련 비밀 문서가 공개되었다. 이 비밀 문서에는 북극의 기상, 해류, 빙상의 정보 등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진 한 장과 실제 경험담이 기록된 문서가 공개되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지구 공동설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이 봉인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특이 공개된 사진 중 한 장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굴뚝의 존재와 이들의 주기를 관측한 내용까지 확인시켜 주었다. 이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는 다음 포스팅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지구 공동설 관련 주장자들은 이 굴뚝과 개폐 운동 사이의 홀이 또 다른 지구가 내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해군 제독 버드 경험담 : 사실 이미 중세 이전부터 지구 내부에 또 다른 지구가 있다고 주장한 과학자와 이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존재했었다. 1920년에는 지구 공동설을 다룬 '지구 내부로의 여행'이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이 비밀 문서 공개로 또 다른 한명의 지구 공동설 경험자가 추가되었고,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이 설명은 과거부터 전해내려오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47년 미 해군 제독 버드는 북극을 탐사하던 중 북극 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본 세계는 북극에서 볼 수없는 산맥과 거대한 매머드와 같은 거대 포유류 등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목격담은 목격담은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지만 보고서는 50년간 극비문서로 취급되었습니다.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 이야기 : 미국의 외계인 접촉자인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미국 중앙정보국 CIA 직원)는 "NASA와 미국정부의 고위급 인사는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를 은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표밑 수백 km의 지구 중심부에서 1994년 10월부터 미 우주항공국으로 복잡한 수학적 암호로 된 전파를 보내오고 있다는 소식이 NASA 소식통을 인용 언론에 보도되었다.

 

지하세계의 고 지능 생명체가 인류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며 NASA 과학자들이 이 암호를 푸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우리의 과학으로는 지하세계로 전파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없는 반면 미지의 지하 문명은 지구보다 훨씬 기술이 발달한 수준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지구 공동설과 관련하여 이들이 주장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중심으로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별 극복에 앞서

 

이별을 위로하는 글귀과 노래를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나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 추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된다." 그러나 이별 당시에는 절대 들리지 않고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말합니다.

 

이별 글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혜민 스님의 글귀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이별은 힘들어 그저 흘러가는 구름일 뿐입니다. "정말 좋은 인연이라면 그렇게 힘들게 몸무림치지 않아도 이루어집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인연이라면 그냥 놓아주세요."

 

헤어지는 것도 기술입니다. 그러나 우린 헤어지면서 하지 않아도 될 말과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연이 아님에도 길가에 떨어진 낙엽처럼 만신창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매번 반복하게 됩니다. 이별을 극복하고 슬기롭게 헤어지는 이별 극복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별 극복

 

 

■ 이별 극복 방법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극복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인연이 아닌 사람과 이별은 가급적 빨리 극복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이별은 처음 만났을 때 설레임이 있었던 것처럼 노력과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별 극복 방법은 이런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헤어진 사실을 인정한다.

 

이별로 나날이 힘들어 하는 것은 이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별이란 것은 서로 상대방을 알기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지만 이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이겨야 한다.

 

이별에 아픔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별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지나가는 구름일 뿐입니다. 앞으로 당신에게 펼쳐질 아름답고 행복으로 채워질 내일을 생각하며 즐겁게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세요. 어슬픈 인연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것 때문에 삶이 침해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사랑이란 현재 당신의 존재 자체를 조건없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고 사랑하는 그 이유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과 새로운 인연은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과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상대를 미워하지 마세요.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이 아니고 집착이고 욕심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쿨하게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에게 신경을 쓰세요.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고전환과 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슬픔에 젖어 주위 사람과 일에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갖힐 수 있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까지 겪기도 합니다. 일이 없어도 외출하여 친구를 만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세요. 그리고 수다도 떠세요, 단 상대에 대한 험담은 하지 말고 쿨한척 하세요.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도 외출하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이별 극복 방법

 

■ 이별 극복 방법 주의할 점

 

가장 위험한 것은 이별을 잊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성급히 만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뿐만 아니라 예의도 아닙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사랑이 존재할 것 입니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쳐지나가는 인연은 지나치고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숙취 해소법에 앞서

 

대한민국에서 술자리는 일상입니다. 적절히 조절해서 마실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주량을 넘으서면 다음 날 하루 종일 힘든 경우 종종 있으셨죠. 피할 수 없는 술이라면 자신의 건강과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라도 숙취해소법 꿀팁 꼭! 읽어보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올바른 숙취 해소법과 잘못 알려진 숙취 해소법을 함께 알아볼게요.

 

 

■ 숙취 해소법 꿀팁

 

알코올 흡수에 도움이 되는 물과 안주

 

물은 알코올 분해를 도와주고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춰주어 위 부담을 줄이는데 한 몫합니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주량에 느낌이 올 때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안주도 비슷한 역할을 하니 물과 안주를 충분히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안주는 과식을 불러 살을 찌우기에 조심하셔야 겠죠.

 

샤워 또는 반신욕 하기

 

미온수로 샤워 또는 반식욕은 혈액순환을 원할하게 하여 알코올 분해 속도를 빨라지게 하고 숙면과 아침에 잘 일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음주 후 조금 귀찮더라도 샤워를 하시면 아침이 조금은 편안해 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온도가 높은 물로 샤워를 하면 탈수 현상을 유발해 숙취가 더 심해질 수도 있으니 유의해 주세요.

 

숙면은 취하자

 

숙면을 취하게 되면 간의 해독작용이 활발해져 숙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물 한 잔 드시고 잠자리에 드세요.

 

다음 날 아침 꼭! 밥 챙겨 먹자

 

음주 후 어지럽고 피로를 느끼는 것은 술이 포도당 합성을 방해해 혈당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전날 과음으로 인해 피곤해진 몸에 활기를 주고 잃어버린 포도당을 채우기 위해 꼭 아침 밥을 드세요. 밥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해장국입니다. 특히 콩나물국은 아스파라긴산과 비타민C가 풍부해 우리 몸 속의 독성 물질을 제거하는데 효과적입니다. 북어국도 아미노산이 풍부에 위에 자극을 주지 않아 속을 편하게 해주는 대표 해장국입니다. 그러나 기름기가 많은 뼈 해장국은 숙취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과일 쥬스 또는 차 한 잔 하자

 

알코올을 분해 할 때는 다량의 비타민C가 필요하게 됩니다. 과일 쥬스의 경우 수분과 비타민C 둘다 풍부해 알코올 해독 작용에 도움이 됩니다. 가급적 생과일 쥬스가 좋겠죠. 차와 커피도 좋습니다. 카페인 성분은 이뇨작용을 도와 독성 물질 배출을 돕고 일시적인 각성 효과가 있어 술이 깨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소량의 카페인은 혈관을 수축해줘 두통을 완화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특히 녹차의 경우 아세트알데히드 성분을 분해하기 때문에 숙취로 인한 피로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꿀자 유자차도 과당과 비타민 함량 되어 있어 숙취에 도움을 줍니다.

 

 

■ 잘못 알려진 숙취 해소법

 

카페인 과다 섭취

 

앞서 알아본 것처럼 소량의 카페인 섭취는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지만 과다 섭취시에는 오히려 두통이 악화됩니다. 또한 카페인은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위장 장애까지 일으키기도 합니다. 올바른 숙취 해소를 위해 한 잔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뼈 해장국, 햄버그 등과 같은 기름진 음식

 

술 마신 다음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찾는 뼈 해장국도 좋지 않습니다. 특히 피자, 햄버거, 치킨과 같은 기름진 음식은 절 대 금물입니다. 이들처럼 기름진 음식은 숙취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음주로 약해진 위와 속을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음식들입니다. 가볍게 물 한 잔과 콩나물 국 정도면 최고의 해장국입니다.

 

두통약과 같은 진통제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두통 진통제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진통제에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있는데 알코올과 결합하면 신상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술로 발생한 두통은 진통제는 복용하지 마시고 시간이 약이다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나을 듯 합니다.

포퓰리즘이란?

 

포퓰리즘(Populism)이란 대중의 견해의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석을 하면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형태 중 하나입니다.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중의 인기만을 좇는 대중주의라, 인기영합주의·대중영합주의 등과 의미로 사용한다. 선거철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해 일단 말하고 보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대중적인 인기,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일반 대중을 호도하여 지지도를 이끌어내고 대중을 동원시켜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려는 정치 형태라 말할 수 있다.

 

 

포퓰리즘의 유래와 역사

 

포퓰리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로마시대의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가 농지 개혁을 추진하던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농민 계몽을 통하여 사회 변혁을 꾀한 '나로드니키(Narodniki) 운동'과 미국에서 인민당(People's Party)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운동에서 비롯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더 일반적이다.


이후 전개된 포퓰리즘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대중에 대한 호소’와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대중에게 호소해서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점, 다수의 지배를 강조하고 직접적인정치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즉, 기득권 정치 세력과는 달리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설적으로 표출하고 진정한 민주주를 위하여 현실을 타개한다. 소수의 엘리트 특권층이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에 상대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정치가는 상대 정치세력과 대립적인 관계에 직면할 때 대중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그 지지도를 권력유지의 기반으로 삼는다.

 

 

■ 포퓰리즘 사례

 

포퓰리즘 성공 사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추진한 기아 퇴치 및 실용주의 노선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룰라 대통령은 월 소득액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정부가 현금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임기 동안 빈곤율을 10% 이상 떨어뜨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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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즘 실패사례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 포퓰리즘이다. 페론은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수용하는 등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민중의 지지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독재정치를 펼쳐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같이 부정적 시각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편의나 기회주의적 생각으로 포퓰리즘을 활용한다.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비민주적인 행태와 독재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활용했다.

 

■ 포퓰리즘의 문제점

 

포퓰리즘의 근본 요소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편의주의(便宜主義)나 기회주의(機會主義)이다. 특히 선거를 치를 때 유권자들에게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일이 전형적이다. 포퓰리즘을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과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고 겉모양만 보기 좋은 개혁, 중장기적인 고려없이 당장의 국면만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책을 내세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만을 위하고, 합리적인 정치·사회 개혁보다는 집권세력의 권력유지 또는 비집권세력의 권력획득 수단으로 악용될 뿐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앞서

 

세계 7대 불가사의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됩니다. 기원전 2C경 수학자 필론이 고대 그리스인 입장에서 관광명소라 일컬어지는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관광지입니다. 고대 7대 불가사의라고도 합니다. 현존하는 것은 이집트 카푸왕의 피라미드만 있으며, 나머지는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추가되어 조금은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세계 미스테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규모와 기술에 있어 불가사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유네스코에서 선정하였으며, 그 과정은 관련 전문가와 인터넷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불가사의라는 것은 그 시대의 기술과 현재의 기술로도 복원이 불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세계 미스테리라 할 만 것은 오파츠(Oopats)라는 것도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당시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거나 제조법이 알려지지 않은 유물을 말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오파츠에 대해서도 포스팅해보겠습니다.

 

■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필론의 불가사의와 달리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모두 현존하는 건축물입니다. 최근 선정한 7개의 불가사의 건축물은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거대 예수상, 마추픽추, 타지마할, 콜로세움, 페트라, 만리장성"입니다. 7개의 건축물 모두 그 규모와 웅장함은 굉장한 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동영상을 먼저 보셔도 됩니다.

 

 

 

 

▶ 멕시코, 지첸이트사 피라미드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지입니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族)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新帝國)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텍-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戰士)의 신전(神殿)’,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 브라질, 거대 예수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코르코바도산(corcovado Mt.704m) 정상에 있는 그리스도상.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으로서 관광객들의 세계적인 명소입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규모는 높이 38m, 양팔의 길이 28m, 무게 1,145톤이다. 설계는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Heitor da Silva Costa)와 폴란드계 프랑스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Paul Landowski)가 담당하였으며, 자금은 기부금으로 충당하였다. 1926년부터 1931년에 걸쳐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그리스도가 두 팔을 한일자(一) 모양으로 넓게 벌리고 서 있는 모습으로, 신체 부분을 각각 따로 조각하여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외관은 하얀 빛깔의 납석을 발라 마감하였으며, 기단 내부에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

 

▶ 페루, 마추픽추

 

2000년 새롭게 보수하였으며 주변에서는 코파카바나 해안, 이파네마(Ipanema) 해변, 슈가로프산(Sugarloaf Mt.) 등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2007년 7월 만리장성, 페트라 등과 함께 신(新)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되었다. 해발 2,430m에 자리한 마추픽추(Machu Picchu)는 열대 산악림 가운데에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잉카 제국의 절정기에 건설되었으며 가장 놀라운 도시 창조물로 평가될 만한 이 유적의 거대한 벽, 테라스, 경사로는 마치 자연적으로 깎여서 형성된 절벽처럼 보인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이곳의 자연 환경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아마존 강 상류의 분지를 에워싸고 있다.

 

▶ 인도,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로 나타나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이탈리아,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으로,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의 4층인데, 플라비우스 왕조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과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 중국,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며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연장 길이 2,700㎞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에 이른다.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이다. 처음 건축될 무렵의 길이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 보하이만[渤海灣]까지 약 1,500㎞였다. 이후 명(明)나라 때 총 길이 2,700㎞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淸)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요르단, 페트라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유적지입니다.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1812년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잊혀진 페트라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에 알려졌다.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1989)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바 있다.

법인등기부등본 인터넷 발급과 법인인감증명서 인터넷 발급

 

바쁘신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인등기부등본 인터넷 발급 가능

법인인감증명서 인터넷 발급 불가능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가능, 불가능 이야기가 있어 결론부터 먼저 말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신청하고 발급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인등기부등본 인터넷 발급

 

상호를 알고 있을 경우 인터넷 등기소에서 상호 검색시 법인등기번호 확인 및 법인등기부등본 열람이 가능합니다. 법인등기부등본은 특정법인에 대해 등기사항으로 목적변경, 주소지 이전, 업태 추가 등 이력확인 및 변경이 가능합니다.

 

규모가 큰 경우에는 회사에서 직접 처리하지만 소규모의 법인일 경우 주소지와 대표자 변경과 같은 경우가 종종발생합니다. 이 때 법무사에 맡기면 편하지만 비용(약 25~30만원)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직접 하셔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비용도 일정 부분 Save 되기 때문에 직접 한 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법인주소지변경을 예를 들어 알아보겠습니다.

 

절차 : 1. 관할 구청에 등록 면허세 신고 2. 등록면허세, 등기수수료 납부 3. 관할 등기소에 법인변경등기서류 제출 4. 세무서에 사업자등록 정정 신청

 

본점 이전 등기 서류 : 1. 본점이점 신청서 2. 공증받은 이사회희시록(3인 미만의 이사일 경우 본점이전 결정서로 공증의무는 면제, 단 3인 이상일 때는 과반수 이상의 동의 의사록(도장 받아야 함)이 있어야 합니다.) 3. 등록면허세납부 영수증 4. 등기신청수수료 납부 영수증 5. 직접 신청 또는 대리 신청(재직증명서, 위임장 첨부)

 

 

* 법인본점이전 신청서는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 > 등기신청 > 등기신청양식에서 다운로드합니다.

제목에 이사 결정서를 쓰고 ** 신주소로 이전합니다 작성 후 도장을 찍으시면 됩니다.(법인일 경우 이사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등록세 면허세 납부 확인서는 '위택스'에서 납부합니다. 직접 하시게되면 약 15만원 내외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약 10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대신 품을 좀 파셔야 합니다.

비용과 절차는 관할 등기소 또는 구청에 문의하시면 민원이기 때문에 친절히 상담해줍니다. 관내 이전과 관 이전과 위치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업태만 추가하면 60,00원 내외에 비용이 들지만 법무사에 마끼면 2~3배 정도 더 드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법인등기부등본 내용이 바뀌면 사업자등록증 내용도 바뀌기 때문에 법인등기부등본 변경 = 사업자등록증 정정과 같습니다. 사업자 등록증 정정 서류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변경 내용이 포함된) 법인등기부등본 2. 법인인감, 법인인감증명서 3. 대표자 신분증(사본) 4. 임대차 계약서

 

법인인감증명서 인터넷 발급

 

법인인감증명서는 인터넷 발급이 불가능합니다. 단 신청예약은 할 수 있지만 큰 의미가 없습니다. 법인인감증명서는 필요할 때마다 떼서 사용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유효한 법인인감서의 사용기간은 발급일로부터 3개월이내며 부동산 계약의 경우 1개월 이내입니다.

 

법인인감증명서는 법인통장, 카드, 대출, 부동산, 정부기관, 민관기관 계약 등과 관련해서 사용됩니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 제출이 많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이나 법인등기부등본처럼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법인인감증명서 발급 방법은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 예약 후 가까운 등기소 방문', '직접등기소방문', '등기소 무인발급기 이용' 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등기소를 방문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와 이유 10가지

 

 

사실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와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가장 많이 화자되는 10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사적, 지정학적 위치 등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로는 없지만 일본이 날뛰니 국민된 입장으로 최소한의 지식 10가지입니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주장과 이에 대한 진실을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포스팅 중간에 설민석님이 말하는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와 이유를 첨부하였습니다. 바쁘신 분은 동영상 내용을 먼저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일본이 말하는 독도에 대한 진실 이야기

 

1. 일본은 우리나라가 옛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없다라고 합니다. 물론 천부당 만부당 말도 안되는 망언이죠. 지하에서 이사부 장군이 통곡할 일이죠. 한국의 수만은 고지도와 문헌에서 독도의 옛 이름을 '우산국'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2.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은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 지도의 초판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채색되지 않았고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독도를 일본 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독도를 자신의 땅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3. 일본은 17C 중엽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 이 주장 2번과 같은 이유로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일본의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서는 일본의 서북쪽 한계를 오키섬으로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 스스로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의 영토에서 제외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문헌까지 증거로 말하는 것을 보면 딱하기도 합니다.

 

4. 17C 말 일본은 울릉도를 조선의 영토라 판단해 도해를 금지하였다. 일본 자료인 '오야 가문의 문서'에서 일본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판단하였다.

 

5. 일본측의 주장에 의하면 안용복의 진술 내용은 신빙성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 이 또한 터무니 없는 주장입니다.안용복의 진술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문헌에도 있습니다.  '죽도기사', '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 '인부연표', '죽도고' 등 일본문헌에는 안용복의 도일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6. 또 다른 일본측의 주장인 '1905년 시네마현의 독도 편입은 영유의사의 재확인었다'라고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명연설에서도 있었지만 1905년 러일전쟁은 한국 침략전쟁이었다. 독도를 병참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강제 편입을 한거지 영유의사 확인은 아니다. 당시 일본의 주장을 살펴 보면 어처구니 없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임에도 '독도는 주인이 없는 땅이기 때문에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갑자기 일본의 주장이 바뀝니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로 영유의사를 재확인한 것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절 자신들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한 문서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7.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기초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하도록 요구하자 미국이 거부한 이유는 독도가 일본의 관할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1949년 11월 이전까지 작성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기초문서에는 미국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로비로 인해 그해 12월에는 '독도'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섬이 많은 우리나의 경우 이 시기에 기록되지 않는 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때 기록되지 않은 섬들도 지금은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전라도와 남해 아래 작은 섬들 모두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8. 이번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일본측의 주장입니다. 1952년 독도를 주일 미군의 폭격훈련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나타낸 증거다'라고 주장합니다. 독도는 당시 한국 어민들의 주요 어로활동 구역이었으나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독도를 미군의 폭격훈련구역으로 지정하고 폭격훈련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만약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다면 그들의 어민을 보호하고 천해자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는 것 까지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9. 일본이 지금까지 쭉 하고 있는 잊을만하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현재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 한국은 1905년 시네마현 편입 이전부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하였습니다. 1945년 독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독도에 대해 주권을 행사해왔습니다.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한국의 땅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10. 독도 영유권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되어야 하는데 한국측이 거부했다. 독도는 일본에 잠시 침탈되었다가 되찾은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우리는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갈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일본은 '한일간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을려는 졸렬한 의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국정농단사건에 목숨 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혼란스런 정국을 이용해 일본 아베 총리의 망발과 역사 왜곡은 도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제발 정신 바짝 차려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우리 국민이 신경 안쓰도 될만큼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독도는 우리땅 이유는 특검의 말처럼 차고 넘칩니다. 다만 일본만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역사 왜곡까지 해가면서 왜 저런 찌질이 짓을 하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독도 바로알기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인 이유 첫 번째 시간은 가볍게 '옆집 아줌마로 이야기'로 출발하겠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일본과 우리의 현재상황을 가장 쉽게 잘 알려주는 것 같아 선택하였습니다. 물론 옆집 아줌마는 일본입니다.

 

독도는 우리땅 이유 : 옆집 아줌마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희 옆집에는 삐쩍 마르고 무섭게 생기신 무서운 아줌마가 삽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자기 자식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이 아줌마는 이웃사람들한테 음식을 나눠 주면서 제가 자꾸 자기자식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고 다닙니다.

 

요즘은 제 이름도 바꿔서 퍼트리고 호적도 위조해가며 사람들한테 보여줍니다. 제가 왜 필요할까요? 외모도 힘도 없지만 저는 공부를 잘합니다.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저희 엄마는 그것을 아시곤 화를 내시며 사람들에게 제가 자신의 자식임을 증명하시고 다니십니다. 하지만 막상 옆집 아줌마가에게 직접 찾아가 따지진 않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무서워서일까요?

 

저는 이제 제가 정말 이 집 자식인지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저희 부모님은 왜 절 당신의 자식이라고 당당히 밝히지 않는 걸까요? 전 부모님이 이웃집에게  확실히 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확실히 저희 부모님의 자식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름은 독도입니다.

 

사실 전 누가 이런 글을 적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읽는 내내 감동하고 감탄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거나 이미 알고 계셨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저와 똑 같은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 이야기입니다.

 

 

독도 우리땅인 이유 : 옆집 아줌마 뒷 이야기

 

사실 뒷 이야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 쉽게 잘 표현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한 번 적어 보겠습니다. 일본은 국제 무대에서 다케시마라하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음식을 나눠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케시마를 '호적 바꿔치기'로 표현하고 일본이 호적과 음식을 주면서까지 자기 자식이라고 우기는 이유는 바로 독도가 가진 경제적, 군사적, 지릭적, 학술적 가치 때문입니다.

 

단순히 독도가 매장하고 있는 자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자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지만 군사적, 지리적, 학술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연재 포스팅에서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우리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대응에 대해서도 한 소리 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이 부분이 가장 불만입니다. 역사적 문헌 증거 자료가 차고 넘치는데 왜 이 부분을 강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혹시 우리 국민이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독도뿐만 아니라 위안부 관련 문제에 대해서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일본은 때만되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데 우리정부의 대응은 너무 안일합니다. 이제라도 제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할 수 있는 강한 정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린 국민한테 강한 정부보다 국민의 자긍심을 세워줄 수 있는 강한 정부를 원합니다.

 

독도 : 경상남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

 

독도 유람선을 타면 독도 주변을 돌며 가재바위, 독립문바위, 촛대바위, 얼굴바위 등 각양 각색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천혜의 어장에서는 어민들의 조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독도가 엄연한 우리 땅, 우리 삶의 터전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삼재와 오복

 

'올해는 삼재의 해이니 조심해야 한다'와 '이빨은 오복 중 하나이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막연히 3재는 나쁜 것 이빨 외에 나머지는 뭐가 있지 궁금해보신 적 없나요? 사실 치아는 오복에 있지 않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삼재와 오복 뜻과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삼재(三災) 뜻과 의미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해를 말한다. 도병제·질역재·기근재, 또는 수재·화재·풍재가 있다. 사람이 사노라면 행운과 불행을 겪는데, 액운이 든 해를 액년 또는 3재년이라고 부른다. 3재의 해에 해당하는 사람은 액을 쫓고 3재를 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닥쳐온다고 전한다. 3재란 누구나 맞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해라도 3재의 해에 해당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12지로 따진다.

 

사(巳)·유(酉)·축생은 해(亥)·자(子)·축년에, 신(申)·자(子)·진생은 인(寅)·묘·진년에, 해(亥)·묘·미생은 사(巳)·오(午)·미년에, 인(寅)·오(午)·술생은 신(申)·유(酉)·술년에 각각 3재가 든다. 9년마다 3재가 들기 때문에 3재가 드는 3년간은 인간관계나 모든 일을 꺼리고 삼가야 할 일이 많다. 심지어 결혼이나 회갑잔치, 이사나 개축 같은 인간사의 중요한 일들도 3재가 든 해에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세속에서는 이와 같은 복설을 믿고 3마리의 매를 그리거나 삼두일족응 부적을 문설주에 붙여 액을 막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초에 홍수매기를 하여 가족 중에 3재가 든 사람의 액막이를 해준다. 절이나 무당집에 가서 부적을 해오기도 하고 제웅을 만들어 땅에 묻거나 들판에 버려 악귀를 쫓아내기도 한다. 2016년, 2017년, 2018년의의 삼제는 호랑이띠, 말띠, 개띠입니다.

 

삼재와 오복


오복(五福) 뜻과 의미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인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의 다섯가지 복을 말한다. 오복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서경』「홍범편」이다. 그 뒤 여러 경전에 인간 오복에 대한 말이 나오고 시인들의 작품에도 많이 나타난다.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5가지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합니다.

 

오복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도 옛부터 즐겨써온 말로 가장 행복한 삶을 말할 때 ‘오복을 갖추었다’고 말하였으며, 새로 집을 건축하고 상량(上梁)할 때 대들보에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쓰고 그 밑에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고 쓰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가 되었다.

 

오복은 첫째가 수로, 인간의 소망이 무엇보다도 장수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부로,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셋째가 강녕으로,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가 유호덕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뜻은 오래 살고 풍족하고 몸마저 건강하면 그 다음에는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있는 봉사를 해보자는 것으로, 선을 권하고 악을 미워하는 선본사상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다섯째는 고종명은 죽음을 깨끗이 하자는 소망으로, 모든 사회적인 소망을 달성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한 뒤에는 객지가 아닌 자기집에서 편안히 일생을 마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바람은 소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정치가나 학자 또는 지도계층의 소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간에서 바라는 오복은 『통속편(通俗編)』에 나오는데 수·부·귀(貴)·강녕·자손중다(子孫衆多)로, 『서경』에 나오는 오복과 다소 차이가 있다.

 

『서경』 오복의 유호덕이 귀로, 고종명이 자손중다로 바뀐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서민이나 천민은 귀하게 되는 것이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자손이 많은 것이 고종명보다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속담에 인간의 이[齒]가 오복에 든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지만 이가 좋아야만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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