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전벽해(桑田碧海)에 앞서

 

세상이 몰라보게 변한 것을 비유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오늘의 고사성어입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나서 우리나라는 자유와 평화를 찾았지만, 매우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놓였다. 궁핍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나라는 3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은 후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만주화와 경제대국으로의 변모이다. 특히 변변한 자원도 없이 이룬 세계 10위의 경제력은 그야말로 경제 부흥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은 세계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짧은 기간에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인정받을 만한 성과이다.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형편을 잘 아는 사람은 지금과 같은 발전에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뜻

상전벽해(桑田碧海)

桑 : 뽕나무 상, 田 : 밭 전, 碧 : 푸를 벽, 海 : 바다 해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성어이므로, 그날 그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유래

 

 

한나라 사람 채경의 집에 신선 왕방평이 강림했다. 왕방평은 채경의 부모, 형제와 서로 인사한 후 오랫동안 홀로 앉아 있다가 사람을 시켜 선녀 마고를 오게 하였다. 얼마 후 마고가 오자 채경의 전 가족이 맞이했다. 마고는 아름다운 처녀로 나이는 18세 정도였으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옷에는 채색의 무늬가 있었는데, 비단은 아니었지만 광채가 눈부셨으며, 그녀의 형태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마고는 집으로 들어와 왕방평에게 절을 했고, 왕방평은 일어나 맞았다. 자리에 앉은 마고는 지니고 온 음식물을 가져오게 했다. 금 쟁반에 옥으로 만든잔이었고, 음식은 모두 과일 종류로 향기가 실내에 가득 퍼졌다. 그녀는 말린 고기를 모두에게 나눠 주며 기린의 포라고 했는데, 마치 측백나무의 열매 같았다. 마고는 다소곳이 말했다.

 

"제가 신선님을 모신 이래로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지난번에는 봉래에 갔더니, 바다가 예전의 반 정도로 앝아져 있었습니다. 다시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왕방평이 말했다. "동해는 다시 흙먼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성인들이 말씀했소." 마고의 말을 듣고 채경의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선녀 마고의 나이가 얼마란 말인가?

 

동해가 여러 번 뽕나무 밭으로 변했다는 마고의 말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유래되었다.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는 오직 사람들의 노력에 달려 있따.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백아절현(伯牙絶絃)에 앞서

 

▶ 진실한 우정을 뜻하는 고사성어로는 '문경지교, 죽마고우, 관포지교, 간담상조' 등과 같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알아볼 고사성어는 자신을 알아주는 진실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비유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입니다.

 

'친구는 제2의 자신' 이라고 하듯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정도의 친구라면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친구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친두 중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친구가 있고, 반드시 멀리해야 할 친구도 있다.

 

익삼지우(益者三友)란 말이 있습니다. 사귀면 이루운 세 친구를 뜻하는 것으로 '정직한 친구, 신의가 있는 친구, 학식이 있는 친구'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손자삼우(損者三友)'는 멀리해야 하는 친구입니다. '성실하지 못한 친구, 착하기만 하고 줏대가 없는 친구, 공정하지 못하고 불의한 친구'를 말합니다. 익지삼우는 다다익선(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이지만 손자삼우는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는 나쁜 친구입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뜻

 

백아절현(伯牙絶絃)

伯 : 맏 백, 牙 : 어금니 아, 絶 : 끊을 절, 絃 : 악기줄 현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 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로 진실한 우정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실한 우정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또한 깊은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 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줄여서 절현이라고도 하며, 백아파금(伯牙破琴)이라고도 합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유래

 

▶ 백아절현(伯牙絶絃)는 <열자> <탕문>에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서 벼슬을 지낸 유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하였다. 그의 친구 중 자기는 백아의 연주 듣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친구가 거문고 뜯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백아가 높은 산을 오르는 듯 기품 있게 연주를 하면 종자기가 가만히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이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 백아는 또한 고요하게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연주하기도 했다. "아주 훌륭해! 물결이 출렁이는 것이 마치 황하와 같구나." 종자기는 백아의 연주를 높이 평가하며 마음을 정확히 읽었다. 하루는 백아와 종자기가 산으로 놀러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바위 아래에 머물게 되었다. 백아는 슬픈 감정에 사로잡혀 연주를 했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를 타다 다시 산이 무너지는 가락으로 이어 나갔다. 종자기는 연주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말했다. 감동한 백아는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자네가 나의 뜻을 이리도 깊이 알아주는군. 정말 내 마음과 같네. 내 음악을 알아주는 이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어느날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음악을 들어 줄 종자기가 없음을 크게 슬퍼하고 상심하던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던 친구의 죽음이 얼마나 애통하고 괴로웠으면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참다운 친구는 자신을 알아줄 때 진정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에 앞서

 

산전수전(山戰水戰)은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어 경험이 많음을 뜻하는 표현으로 <손자> <모공>에서 나온다. 잘 닦인 포장도로는 맑고 화창한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내리는 날이든 신발을 더럽히지 않고 잘 다닐 수가 있습니다. 울통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는 흙이 묻어 예사로 신발이 더럽혀진다.

 

인생이 잘 닦인 포장길이라면 살맛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굴곡이 없이 평안하고 평탄하게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바람을 갖는다고 해서 속물근성을 가졌다고 말하면 무리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심성이다.

 

사실 인생을 살라가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잘 닦인 포장도로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인생도 있다. 비포장도로 같은 인생은 역경을 운명처럼 타고난 듯이 온갖 시련을 겪는다. 남들이 겪지 않은 시련과 역경을 겪다 보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억울해 하지 말자. 힘든 역경을 겪은 사람이 나중에 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련과 역경은 잘되기 위한 필수 과정과도 같습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뜻

 

산전수전(山戰水戰)
山 메 산, 戰 싸움 전, 水 물 수, 戰 싸움 전

 

산에서의 싸움과 물에서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세상(世上)의 온갖 고난(苦難)을 다 겪어 세상일(世上-)에 경험(經驗)이 많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은 사전적 의미그대로 산과 물에서 싸웠다는 말로,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어 경험이 많다는 백전노장과 유사한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 산전(山戰) 산에서 싸우는 것이고, 수전(水戰)은 물에서 싸우는 것으로, 육지에서 싸우는 것보다 강력한 체력과 고도의 전술이 필요하며 피해와 희생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훨씬 어렵다. 따라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지 않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평범한 병사를 이끌고 산전수전을 치르면 실패하기 쉽다.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것은 군사적인 면으로는 백전노장 또는 역전의 용사를 말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모진 풍파를 다 겪어 정신적 및 육체적으로 강인한 사람을 뜻하며, 어지간한 시련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산전수전(山戰水戰) 유래

 

'적과 싸울때는 반드시 높은 언덕을 차지하여 유리한 지형에 의지한다. 저을 치기에 유리하고 적진으로 쳐들어가기에 유리하여 이길수 있다' 산전(山戰)을 말하는 것으로 유기의 <백전기략>에서는 '산에서 싸울 때는 높은 곳에 있는 적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물에 가까운 언덕에서 싸울 때는 반드시 물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야 한다. 한편으로 적이 강을 건너로독 유인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적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반드시 적과 싸우고자 한다면 물 가까이에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적이 건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적과 싸우지 않겠다면 언덕에 의지하여 적을 막아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적이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면 절반쯤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이롭다.' 수전(水戰)을 말한다. <백가전략>에서는 '적이 강을 건너면 공격하라'고 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은 병법에서 전술적인 뜻을 의미하지만, 전투 과정에서 겪는 갖가지 어려움처럼 인생에서 겪는 갖가지 어려움과 시련을 일러 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산전수전(山戰水戰)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겪어 온 많은 고생'을 뜻하는 '만고풍상'이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앞서

 

살다 보면 온 사방이 꽉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를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뜻하는 고사성어가 많이 있지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대한 뜻과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위기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타의에 의해 예기치 않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암담함에 불안함이 엄습하고 두려움이 밀려온다. 위기를 맞아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심정에 사로잡히면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강하게 다잡아야 한다. 마음이 탄탄하면 어떤 위기에서도 자신을 지켜 낸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반듯이 하면 못 해낼 것이 없다. 마음이 강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마음 자세 때문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뜻

 

사면초가(四面楚歌)

四 : 넉 사, 面 : 낯 면, 楚 : 초나라 초, 歌 : 노래 가
사방(四方)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狀態)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孤立) 상태(狀態)에 빠짐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를 말한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비난 속에 외톨이가 된 상태를 비유하여 말하기도 한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의하면 초(楚)의 항우가 한(漢)의 유방(劉邦)군에 패하여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었을 때, 사방을 에워싼 한나라 군사 속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크게 놀라,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하고 슬퍼하였다 한다.

 

사면초가 뜻과 유래

 

사면초가(四面楚歌) 유래

 

▶ 진나라가 멸망한 후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이 천하를 다투면서 5년동안 싸움을 벌렸다. 싸움에 지친 이들은 4년째 되던 해 가을, 항우가 인질로 ㅈ바고 있던 유방의 가족을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하는 휴전협정을 맺었다. 항우는 약속대로 철수했지만,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협정을 위반하고 항우를 공격했다.

 

항우는 해하에서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항우의 군사는 10만이었고, 한나라는 한신이 이끄는 30만, 유방의 20만, 팽월의 3만, 경포와 유가의 군대를 합쳐 모두 60만 대군이었다. 그 중 주력군은 한신의 군대였다. 중과부적으로 한신의 군대에 포위가 된 항우의 군대는 군량미마저 떨어지자 의기소침해 있었다.

 

양군이 대치하고 있던 어느 날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장량의 계책에 따라 한나라 군사들이 펼치는 심리전이었다. 초나라의 노래는 감성적이고 애잔한 것이 특징이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구슬프기가 그지 없었다. 오랫동안 부모 형제와 고향 산천을 떠나온 항우의 군사들은 모두 애잔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러는 가운데 초나라 군사들이 한나라 군대에게 모두 항복한 줄 알고는 전의를 잃고 말았다. 항우의 군대는 처참히 무너졌고, 항우는 오강에 이르러 자결하여 승리는 한나라에게 돌아갔다.

 

사면초가란 사방이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극한 상황을 말하며, 즉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도 패한적인 없던 전하무적 항우가 한나라의 장량이라는 걸출한 지략가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힘이 천하를 휘어잡더라도 지헤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사성어입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에 앞서

 

자신의 주관과 의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딱히 어느 연령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십대나 젊은이나, 중장년층이나 그 이상에서도 종종 보인다. 주관과 의지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행동하다 보면 주체성이 결여됨은 물론, 삶의 가치과도 제대로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런 삶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다. 몸은 자기 것이라도 생각은 남의 것이 되고만다. 이와 같은 태도나 행동을 뜻하는 부화뇌동(附和雷同)이 오늘 알아볼 고사성어 입니다.

 

주관과 의지는 삶을 지켜주는 등불과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동안에 빛을 준다. 원하는 것을 시도하고 행하는 동안에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할 때도 빛을 준다. 무엇을 신중하게 결단할 때도 주관과 의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방향을 잃은 배는 항로를 벗어나 좌초하여 침몰할 위험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주관과 의지가 없으면 인생이란 바다를 건거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인생의 바다에 깊이 침몰해 버리면 다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인생이란 바다를 잘 건너기 위해서는 반듯한 주관과 강인한 의지로 꾸준히 밀고 나가야

 

부화뇌동(附和雷同) 뜻

 

부화뇌동(附和雷同)
附 : 붙을 부, 和 : 응할 화, 雷 : 우레 뢰, 同 : 같이할 동

 

우레 소리에 맞추어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으로,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하는 태도와 행동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고사성어다. 부화뇌동(附和雷同)에서 원래 뇌동(雷同)이란 우레가 울리면 만물도 이에 따라 울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고 부화(附和)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며, 부화(附和)는 이후 첨가된 말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줄여서 뇌동(雷同)이라고도 하며, 동의어로 뇌동부화, 부부뇌동(附付雷同), 비슷한 말로 경거망동(輕擧妄動), 만장일치(滿場一致), 아부뇌동(阿附雷同)이 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자신의 주체적인 의견과 객관적인 기준없이 물질적인 이해관계 또는 남의 주장이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경고하는 고사성어이다.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주체적인 정치적 철학은 무시한 채 오직 당리당략에 얽매여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이다. 공자는 이와같은 행동들을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고 하였다.

 

 

■ 부화뇌동(附和雷同) 유래

 

"너의 용모를 바르게 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공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자신의 주장처럼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무조건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 <예기> <곡례>에 나오는 말로, 자기다움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군자는 화합하지만 따라 하지 않고, 소인은 따라 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 <논어> <지로>에 나오는 말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다. 의를 숭상하는 군자는 다른 사람과 잘 화합한다. 이익을 따르는 소인은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화합하지 않는다.

 

우레가 한번 울리면 하늘 아래 만물도 덩달아 울린다고 해서 '뇌동(附和雷同)'이라고 한다. 자기 주관 없이 경솔하게 남의 의견에 따른다는 '부화(附和)'가 나중에 붙은 말이다.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잇게 살고 싶다면 남의 말을 생각 없이 따르지 말아야 한다. 주관과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다.

발본색원(拔本塞源)에 앞서

 

오늘의 고사성어는 근본을 뽑아내고 근원을 막아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요인을 아주 없애버린다는 뜻의 발본색원(拔本塞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것은 손톱만한 작은 구멍이 원인이 된다. 작은 구멍을 방치하다 보면 점점 커져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댐이 무너지고 만다. 가시에 박힌 손가락을 그냥 두면 곪는데, 심하면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 사소하다고 방치하거나 무시하면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작고 사소해도 그냥 지냐쳐서는 안 된다. 특히 문제가 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문제가 커지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니 사전에 막아야 한다. 

 

정부든, 기업이든, 됴육이든, 정치든, 군대든 심지어 가정이든 어디든 관계없다. 기강을 흐트러뜨리거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근원은 애초부터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악재가 따르고 끝내는 큰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린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발본색원(拔本塞源) 뜻

 

발본색원(拔本塞源)
拔 : 뺄 발, 本 : 근본 본, 塞 : 막을 색, 源 : 근원 원

 

나무를 뿌리째 뽑고 물의 근원을 없앤다는 뜻으로, 폐단의 근본 원인을 모조리 없앤다는 말입니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의 본래의 취지는 한 마디로 하늘의 이치를 알고, 사람들은 그 욕심을 버리라는 것으로, 사사로운 탐욕은 그 근원부터 없애고 근원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발본색원은 부정부패 척결, 범죄 조직 소탕 등과 같은 주로 사회의 암적인 면을 뿌리째 뽑아 재발을 방지하는 데 인용된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유래

 

▶ 주나라와 진나라가 작은 땅을 사이에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먼저 진나라 왕이 군대를 보내 주나라를 공격하였다. 주나라 왕이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우리와 그대는 군신 관계로, 마치 옷에 갓을 갖추는 것과 같다. 나무에 뿌리가, 물에 수원이 있어야 하듯 백성들에게는 지혜로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

 

만일 갓을 찢어 버리고 뿌리를 뽑고 수원을 막으며 임금을 버린다면 비록 오랑캐라도 나를 우습게 볼 것이다." 주나라 왕의 "뿌리를 뽑고 수원을 막으며'라는 말은 아예 문제가 되는 근원의 싹을 잘라 없애 버리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을 뜻한다.

 

인류의 모든 재앙이나 잘못은 반드시 근원적인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원인을 사전에 뿌리 뽑아야 뒤탈이 없다.

목불식정(目不識丁)에 앞서

 

오늘의 고사성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목불식정(目不識丁)'입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이아 피지 못할 여건 때문에 배우지 못한 것은 이해해도, 게으르고 배우기 싫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싶지 않다. 무식은 스스로를 깍아내리는 못나고 부끄러운 것이다. 무식은 모든 것이 다양화, 전문화된 현시대에 반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알지 못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도 그대로 날려 보낼 확률이 높다. '아는 것은 힘'이라는 말은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앎은 분명히 힘이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배움에는 시기가 없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 평생을 애써도 모자라는 것이 배움이다. 인간은 배우고 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이란 항상 변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꾀한다. 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목불식정(目不識丁) 뜻

 

목불식정(目不識丁) 뜻

目 : 눈 목, 不 : 아닐 불, 識 : 알 식, 丁 : 고무래 정

 

고무래를 보고도 정자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즉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빈다. 일반적으로 일자무식인 사람을 가리킬 때 목불식정(目不識丁)을 사용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한다. 아는 것이 없으면 그 만큼 세상을 보는 폭이 좁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배웠으면서도 무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실제로 모르고 무지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은 실제로 배움이 없다는 뜻보다는 무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연유일 것이다.

 

 

목불식정(目不識丁) 유래

 

당나라 현종 때 장홍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자라 버릇이 없고 성품이 오만불손할 뿐만 아니라 방자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의 부친인 장연상이 나라에 끼친 공적이 있어 순탄한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장홍정은 노룡의 절도사로 부임하였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방자하게 굴며 부하들을 괴롭혔다. 그를 따라온 막료들도 군사들을 함부로 대하고 백성을 능욕하였다. 전임 절도사는 검소했고, 부하와 백성들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장홍정은 오히려 더욱 억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천하가 태평한데 너희들이 무거운 활을 당겨 봤자 무슨 소용이냐? 차라리 고무래 정(丁)자라도 아는 편이 더 낫다." 참다못한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중앙에서 파견된 막료들을 죽이고 장홍정을 잡아 가두었다. 소식을 들은 황제가 노하여 장홍정의 직책을 박탈하며 말했다. "그놈이야 말로 '목불식정(目不識丁)'이로구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장홍정은 함부로 부하들을 대하고 백성들을 능욕하다가 관직을 박탈당했고 만천하에 조롱거리가 되었다. 배우지 못했으면 성품이라도 좋으면 되거늘, 장홍정은 그마저 오만방자했다고 한다. 앎과 무식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앎은 자신을 명예롭게 하지만, 무식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한국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불학무식(不學無識: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음),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자도 아는 것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식일정(不識一丁)도 같은 의미이다.

■ 오늘의 고사성어 명약관화(明若觀火)에 앞서

 

오늘의 고사성어는 어떤 일에 있어 불을 보듯히 매우 명백하다는 의미의 명약관화(明若觀火)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서로 거짓이 없고 매새에 분명해야 한다.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을 둘러대거나 변명한다면 스스로 상대와의 믿음을 깨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고 거북해진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문제는 어디를 가나 누군가를 속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접근해 온다고 가정해 보라. 분명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경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려면 나부터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자신이 투명한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 명약관화(明若觀火) 뜻

 

명약관화(明若觀火)

明 : 밝을 명, 若 : 같을 약, 觀 : 볼 관, 火 : 불 화


밝기가 불을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밝기가 마치 불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뚜렷해서 도무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너무도 뚜렷해서 삼척동자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자꾸 변명을 하거나 잡아 뗄 때 흔히 쓴다.

 

명약관화(明若觀火)와 같은 한자성어로는 명명백백(明明白白)이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명확하다는 뜻이다. "명약관화(명명백백)한 일을 가지고 발뺌을 하려 하다니" 등의 형태로 쓰인다.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신만 알고 남은 모르려니 생각하여 남을 속인다는 뜻의 속담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도 같은 말이다.

 

 

명약관화(明若觀火) 유래

 

기원전 14C경 상나라는 스무번째 임금인 반경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상나라는 분쟁이 일어나고 정치는 부패하여 매우 혼란스러웠다. 거기에다 자연 재해까지 발생하여 동요와 불안이 심해졌다. 반경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도읍은 은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였다.

 

그의 계획은 많은 대신들의 반대에 놓였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원하지 않았다. 반경은 근심하는 백성들에게 호소하며 맹세하였다. "앞선 임금께서는 일이 있으시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삼가셨으나, 그래도 언제나 편치 못하여 일정한 도읍을 갖지 못하고 지금껏 다섯 번이나 도읍을 옮겼다.

 

지금 옛일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늘이 명을 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덕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덕을 버리어 나 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불을 보듯이 잘 알고 있으나, 나도 성급히 일을 계획하여 그대들에게 허물이 되었다.

 

벼리가 있어야 그물이 풀어지지 않는 것과 같고, 농사꾼이 밭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풍성한 가을을 맞는 것과 같다. 결국 반경은 대신들과 백성들을 설득해서 도읍을 은으로 옮겼다. 이후 반경은 치세에 힘써 상나라를 부흥시켰고, 200년이 넘도록 도읍을 옮기지 않았다.

 

반경은 자신의 심정을 것짓 없이 분명히 설명하여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심어 주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도읍을 옮기는 계획을 성사시킨 것이다.

명경지수(明鏡止水)에 앞서

 

복잡 다양하고 빠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일에 치이고 경쟁에 시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쳐 축 처지게 된다. 이것이 누적되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삶이 즐겁지 않고 고행이라 여기게 되어 의욕도 사라지고, 삶에 대한 목적의식도 없어진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삶에 끌려가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수동적으로 사느니 차라리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까지 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태를 맞는다. 이럴 때는 몸과 마음이 맑아지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책을 읽고, 때때로 여행을 하며,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자신을 날마다 돌아보며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러면 복잡한 사회에서 지치지 않고 얼마든지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뜻

 

명경지수(明鏡止水)

 明 : 밝을 명, 鏡 : 거울 경, 止 : 그칠 지, 水 : 물 수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란 뜻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아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본래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는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거울과 물에 비유한 말이다. 밝은 거울과 잔잔한 물이란 뜻처럼 마음이 가장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를 뜻합니다. 출전은 <장자> <덕충부>에 내용이 나오는 원래의 의미는 잔잔하게 가라앉은 물이라야만 들여다보아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명경지수(明鏡止水) 유래

 

명경지수 뜻

 

춘추 전국 시대 노나라에 학덕이 높은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다. 왕태는 죄를 짓고 한쪽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았고 이로 인해 외발이 병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공자에 버금갈 만큼 많은 제자가 따르고 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자가 따름을 불만스럽게 공자의 제자 상계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왕태를 따르는 수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서서 가르치지지도 않고 않고 앉아서 토론 하는 일도 없는데 텅 빈 마음으로 갔다가 충만해져 온다고 합니다. 그는 말이 없는 가운데 가르침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마음에 이루어진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왕태 선생은 성인이다. 나도 아직 찾아뵙지 못했지만, 장차 스승으로 모시려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노나라뿐만 아니라 장차 천하를 이끌고 그분을 따르려 한다." "선생님보다도 훌륭하다니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 가짐은 어떤 것이니까?"

 

다음은 공자가 상계에게 말한 핵심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왕태를 따르는 이유는 그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 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이다. 그러니까 왕태는 거울처럼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

 

거울이 흐르는 물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야 어지러운 세태에서도 자신을 굽어 살핀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어 내면을 살피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 낼 최선의 방책이다.

■ 고사성어 막역지우(莫逆之友)에 앞서

 

고사성어 막역지우(莫逆之友)는 허물없는 좋은 친구를 의미한다.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요? 좋은 친구란 배려심 좋고, 허물을 덮어 줄줄 알며, 어려움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바라는지 미리 알아서 챙겨 주는 친구이다. 불의를 말하지 않으며, 정직하고 겸허하며, 언제나 자싡을 뒤로하며, 나쁜 것은 감싸 주는 친구야말로 참 좋은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면에 나쁜 친구는 배려심이 부족하고, 허물을 드러내 곤란에 처하게 하며, 어려움을 외면합니다. 좋은 것은 자신이 취하고, 언제나 자신을 앞에 두며, 거짓과 위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친구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친구는 또 다른 자신이다. 좋은 친구는 보석보다 귀한 인적 자산이다.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 막역지우(莫逆之友) 뜻

 

막역지우(莫逆之友)
莫 : 말 막, 逆 : 거스릴 역, 之 : 어조사 지, 友 : 벗 우

 

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으로,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를 의미하는 말이다.

 

막역지우(莫逆之友)란 본래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모두 가리키게 되었다.

 

■ 막역지우(莫逆之友) 유래

 

막역지우 의미

 

막역지우(莫逆之友)는 <장자> <대종사>에서 나온다. 어느날 자사, 자여, 자려, 자래 네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없는 것으로 머리를 삼고, 삶을 등으로 삼으며, 죽음을 엉덩이로 여길 수 있을까. 누가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의 일체를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쳐다보며 웃고 마음에 거스를 것이 없어서 마침내 벗이 되었다. 네 사람의 우정은 늙고 병들어 죽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다음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면 말했다. "누가 새삼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니면서 도울 것인가. 누가 과연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서 노닐고, 끝이 없는 곳에서 돌아다니며, 삶을 잊고 끝이 없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세 사람이 처로 쳐다보며 웃고 마음에 거스를 것이 없어서 벗이 되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친구, 서로에게 거스를 것도 막힘도 없는 친구, 더불어 함께함으로써 서로 득이 되고 의미가 되는 친구야말로 진실한 친구이다. 영국 수상을 두 번이나 지낸 윈스튼 처칠과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우정, 조선의 이항복과 이덕형(오성과 한음)의 우정을 보면 서로에게 진실한 친구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친구와 우정에 대한 고사성어로는 관포지교, 죽마고우, 간담상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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