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破竹之勢]에 앞서

 

세력이 강하여 적을 향해 거침없이 쳐들어가는 의미를 가진 파죽지세[破竹之勢]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같은 출발 지점에서 똑같이 출발해도 어떤 사람은 죽죽 앞을 향해 나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출발 지점을 벗어나 어느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가다가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또 다른 사람은 출발지점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일을 추진하는 방법과 자세에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나 자세도 의지와 신념이 약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센 파도처럼 가로막는 어떠한 시련과 문제라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강인한 의지와 발산개세의 강력함은 태산도 거침없이 밀어붙일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뜻

 

파죽지세[破竹之勢]
破 깨뜨릴 파, 竹 대 죽, 之 갈 지, 勢 형세 세

 

대나무의 한끝을 갈라 내리 쪼개듯 거침없이 적을 물리치며 진군하는 기세를 이르는 말이다.

①곧 세력(勢力)이 강대(强大)하여 대적(大敵)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氣勢)
②세력(勢力)이 강(强)하여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모양(模樣)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고사성어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유래

 

위나라 사마염은 원제를 내쫓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진이라하고 무제가 되었다. 이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삼국 가운데 남은 것은 오나라였다. 무제는 두예에게 오나라를 치게 하였다. 두예는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강릉으로 진격했으며, 왕준은 수군을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진격했다. 왕홍는 수도 건업으로 쳐들어 갔다.

 

무창을 공략한 두예는 왕준과 합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향후 공격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어느 장수가 말했다.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일단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두예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마치 쪼개지는 대나무의 기세다(파죽지세[破竹之勢]). 몇 마디 쪼개지기만 하면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진다. 이런 기회를 어찌 버린단 말인가?"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 도읍인 건업으로 쳐들어가 단숨에 함락시켜 버렸다.

 

두예와 어느 장수의 생각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된다. 장수의 말은 이론상으로 맞다. 그러나 당시 군사들의 사기나 상황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 반면에 두예는 상황 판단이 정확했다. 대처하는 해결 방법도 능수능란하여 다른 장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두예처럼 자신 앞에 놓인 문제에 주죽 들지 말고 힘차게 밀고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에 앞서

 

'쓸모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버린다'는 배신의 아이콘의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내쳐지는 만큼 배신감이 들고 허무한 것은 없다. 더구나 그를 위해 헌신한 경우라면 배신감에 더해 분노까지 든다.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인간의 도리를 포기함과 다름없다.

 

신의를 배반하는 사례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심심찮게 일어난다. 특히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하다. 오늘은 아군이었다가 내쳐져 내일은 적이 되는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경우가 소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완전 넌센스인 것이다.

 

특히 정치와 재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실적이 좋으면 승진에다 특별 보너스까지 두둑이 챙겨 주다가 실적이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벗기고 내친다. 실적 앞에는 인간의 도리와 윤리, 합리적인 사고, 상식이 무너지고 만다. 샐러리맨의 비애라 할 수 있는 사자성어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인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뜻

 

토사구팽(兎死狗烹)
兎 토끼 토, 死 죽을 사, 狗 개 구, 烹 삶을 팽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라는 뜻으로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필요(必要)할 때 요긴(要緊)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苛酷)하게 버린다는 뜻이다.

②일이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일이 끝나면 돌보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정(世情)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고사성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도 보인다. 여기서 유래하여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는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유래


한나라 고조 유방은 장량, 소하와 함께 한나라 건국에 뛰어난 활약을 한 한신을 초왕에 책봉했다. 이듬해 항우 휘하의 맹장이었던 종리매가 한신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유방이 알게 되었다. 유방은 곧 한신에게 종리매를 당장 잡아 보내라고 명령했다. 종리매와 오랜 친구였던 한신은 유방의 명을 어기고 종리매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한신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유방은 참모 진평의 건의에 따라 제후들에게 명했다.

 

"제후들은 초의 땅 진에서 대기하다가 순행하는 나를 따르도록 하라." 유방의 명을 받은 한신은 위기를 느꼈지만, 큰일은 없으리라 믿고 유방의 순행에 동참하였다. 한신은 우선 종리매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한신의 말을 들은 종리매는 분노하였다.  

 

"한나라가 초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당신 밑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 한나라에 충성하겠다면 당장이라도 죽어 주겠다. 내가 죽은 후 당신도 유방에게 죽고 말 것이다." 종리매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을 찾아갔다. 한신은 곧바로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재빠른 토끼를 잡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소용이 없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적국을 격파하면 지모 많은 신하는 죽는다고 했던가." 유방은 천하의 인심이 두려워 한신을 죽이지는 않고, 회음후로 봉하여 주거를 장안으로 제한하였다.

천재일우(千載一遇)에 앞서

 

놓칠 수 없는 천금의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회는 어떻게 올까요? 기회는 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삶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는 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손을 잡아 준다. 기회가 기회를 만드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외면한다고 투덜대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기회가 자신을 피해 간다면 삶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아내를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형제를 탓하고, 친구를 탓하고 심지어 직장 동료와 지인까지 탓하게 됩니다. 참으로 유치하고 고루한 발상입니다. 마음 자체를 고치지 않는다면 기회가 영원히 외면할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와 손을 잡아 줄 것입니다. 노력의 정도에 따라 뜻하지 않은 놀라운 기회가 찾아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천재일우(千載一遇) 뜻

 

천재일우(千載一遇)
千 일천 천, 載 실을 재, 떠받들 대, 一 한 일, 遇 만날 우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機會)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동진 시대의 학자로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지낸 원굉(遠宏)이 삼국시대의 건국 명신 20명을 찬양한 글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을 남겼는데, 그 중 위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 '천재일우 현지지가회(千載一遇賢智之嘉會;현명한 군주와 지모가 뛰어난 신하가 만나는 기회는 천년에 한 번쯤이다)' 라는 일절에서 나온 말이다. 보통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말로 사용한다.

 

 

천재일우(千載一遇) 유래


원굉은 동진의 학자로 문장이 아주 뛰어났다. 원굉은 삼국 시대의 건국 명신 스무 명을 찬양한 글을 남겼는데, 이른바 <삼국명신서찬>이다. 그중 위나라 순욱에 대한 글에서 어진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기 쉽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섰다.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천년이 지나도 천리마는 한 마라리도 나오지 못한다.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삶이 통하는 길이며, 천 년에 한 번 만남은 현명한 군주와 지모가 뛰어난 신하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만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잃으면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백락은 주나라 시대에 말을 감별했다는 명인을 말한다. 순욱은 영천 사람으로 동탁은 그를 황보현의 수령으로 임명했다. 숙욱은 벼슬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가족과 함께 기주로 갔다. 원소가 기주목으로 있었다. 순욱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원소는 극진히 예우했다. 순욱은 원소가 자신이 의지할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 마음으로부터 지워 버렸다.

 

원소 곁을 떠난 순욱이 스스로 조조를 찾아 갔다. 조조는 반가이 순욱을 맞이하였다. 순욱은 조조가 스스로 위나라의 왕이 되자 이를 반대하여 조조의 분노를 샀고 자결하였다. 조조는 경후라는 시호를 내려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한 순욱을 기렸다.

 

순욱과 조조의 만남은 가히 천재일우(千載一遇)라 할 만하다.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둘의 운명인 것이다. 서로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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