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狐假虎威)에 앞서

 

최근 국정농단 사건처럼 남의 권세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허세와 허풍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 있다. 대개 자신감이 없고 능력도 없어서 사기성이 농후하다.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이룬 양 거드름을 피우고, 방자함이 하늘 높을 줄 모른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리는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모든 것이 허위와 허세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만다. 날마다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는 부정과 비리이야기입니다.

 

고위 공직자 아들과 딸을 취업, 진학시키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심지어 권력자의 이름을 팔아 청탁하거나 돈을 착복하는 등의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힘 있는 자에게 빌 붙어 자신을 드러내는 썩어 빠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의 말로는 늘 처절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뜻

 

호가호위(狐假虎威)
狐 여우 호, 假 거짓 가, 虎 범 호, 威 위엄 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豪氣)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를 부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가호위(假虎威)' '가호위호(假虎威狐)'라고도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경우에 사용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유래

 

춘추 전국 시대 초기 초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나라 사신으로 왔다가 신하가된 강에에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강을이 말했다. "아닙니다. 북방 나라들이 어째 재상에 불가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혹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전체의 명이 잇었다. 네가 지금 나를 잡아먹는다면 천체의 명을 어겨 천벌을 받을 것이다. 만약 네말을 못 믿겠으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아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마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가 여우를 따라갔는데,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습니다. 사실 짐승들이 달아난 이유는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 때문입니다. 호랑이만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해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 나라들은 소해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우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이 강한 동물인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형설지공(螢雪之功)에 앞서

 

형설지공(螢雪之功)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좋은 환경 속에서 꿈을 이룬 이들도 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 끝에 꿈을 이룬 이도 많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며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지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어쩌면 공감대가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느끼고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본다면 환경 탓만 하기에는 비굴한 변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부족한 노력과 열정을 사회 현상에 기대 상쇄시키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좋은 환경을 아들딸에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어도 해야 한다. 주저앉아 버리면 일어서기가 매우 힘들다. 아파도 내 인생, 슬퍼도 내 인생, 고달파도 내 인생, 외로워도 내 인생이다.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뜻

 

형설지공(螢雪之功)
螢 반딧불이 형, 雪 눈 설, 之 갈 지, 功 공 공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단순히 '형설'이라고 한다. 또 공부하는 서재를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도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유래

 

진나라 효무제 때 차윤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실하고 학문에 뜻이 많았다. 하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낮에는 염심히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기름 살 돈이 없어 개똥벌레를 잡아 명주 주머니에 넣어 빛으로 삼고 공부하였다. 각고면려하며 공부한 끝에 훗날 벼슬이 상서랑까지 이르렀다.

 

같은 시대에 손강이란 이가 있었다. 역시 어려서부터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기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겨울이 되면 창가에 앉아 밖에 쌓인 눈에서 반사되는 빛을 등불 삼아 공부하였다. 손강은 훗날 어사대부가 되었다.  당나라 이한이 지운 <몽구>와 <진서> <차윤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윤과 손강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하였다. 어떤 한경도 불굴의 의지와 신념을 가진 자에게는 손을 들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수많은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둘째, 강철 같은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하였다. 셋째, 어쩌한 것에도 꺽이지 않는 정신을 지녔다. 넷째, 청렴하고 결백했다. 다섯째, 남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돌렸다. 여섯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실은 지난날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에게 반드시 성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에 앞서

 

▶ '그림의 떡'이란 표현이 속담인 줄 알았는데 그림의 떡 사자성어가 있네요. 오늘의 사자성어는 그림의 떡 화중지병[ 畵中之餠 ]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와 동일한 의미로 '농병황지'도 사용되어 집니다.

 

▶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실속형 인간이다. 사실적이고 분명한 일에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 결과는 실제적이면서도 확실하다. 둘째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자기 주관이 불분명하고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쏠리는 현상이 크다.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 불확실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 번째는 비실속형 인간이다. 뜬구름 잡기의 고수여서 하는 일마다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며 위태위태하다. 결과는 언제나 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세월을 축낸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전전긍긍해 봤자 소용이 없다. 능력 밖의 일은 한시라도 빨리 포기하는 편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 뜻

 

화중지병[ 畵中之餠 ]
畫 그림 화,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餠 떡 병

 

그림 속의 떡이란 뜻으로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바라만 보았지 소용(所用)이 닿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이다.
②보기만 했지 실제(實際)로 얻을 수 없음을 뜻한다.
③실속(實-)없는 말에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이다.

 

마음에는 있으나 차지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죠. 병(餠)은 우리말로 떡을 뜻합니다. 즉 있으나 마나 한 것이나 가질 수없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그림의 떡'입니다.이와 동일한 의미의 사자성어 '농병황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농병황지[弄兵潢池] 뜻

 

농병황지[弄兵潢池]
독 옹, 셈 산, 그림 화/그을 획, 떡 병

 

독장수셈과 그림의 떡이라는 뜻으로, 헛된 생각일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뜻합니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 유래

 

위나라 사람 노식에게는 노육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노육은 열 살에 고아가 되었고 전쟁으로 두 형 마저 잃었다. 원소와 공소찬이 싸울 때 유주와 기주에 흉년이 들어 홀로된 형수와 조카들을 보살폈다. 학문이 높고 덕행도 뛰어나 널리 알려졌다. 명제는 그를 등용하여 시중, 이부상서, 중서랑 드의 요직에 임명하였다.

 

하루는 명제가 노육에게 말했다. "인재를 얻고 못 얻음은 그대의 손에 달렸소. 명성만 높은 사람은 뽑지 마시요. 명성은 땅 위에 그려 놓은 떡과 같아서 먹을 수가 없소(화중지병[ 畵中之餠 ]). "명성만으로는 뛰어난 사람을 뽑기에 부족하지만, 평범한 선비는 가르침을 존경하고 선(善)을 흠모하고 찬양하여 명성을 얻습니다.

 

명성을 굳이 미워할 바는 아니옵니다. 예전에는 말로써 아뢰고 공적으로 뽑았습니다. 지금은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지 못하고 비방과 칭찬이라는 평판으로 진퇴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으며, 허와 실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명제는 노육의 말을 듣고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는 제도를 다시 시행했다고 한다.

 

명제는 명성이 단지 '그림의 떡(화중지병[ 畵中之餠 ])'이라고 하며 실제적이지 않다고 강조하였다. 노육 역시 명성만으로는 뛰어난 사람을 뽑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울러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시험은 명성과 실력을 파악 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확고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 실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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