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漁夫之利)에 앞서

 

우리 일상속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란 고사성어를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어부지리(漁夫之利)의 뜻과 유래가 황새와 조개 싸움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어부지리(漁夫之利) 뜻

 

어부지리(漁夫之利)
漁 : 고기잡을 어, 夫 : 사내 부, 之 : 갈 지, 利 : 이로울 리


어부(漁夫)의 이익(利益)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이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엉뚱한 제3자(第三者)가 이익(利益)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이다.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 바람에 엉뚱한 제3자가 덕을 본다는 것을 비유하는 우화같은 고사성어라 할 수 있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유래

 

이 고사성어는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서 비롯되었다. 조(趙)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 하였는데, 때마침 연나라에 와 있던 소진(蘇秦)의 아우 소대(蘇代)는 연나라 왕의 부탁을 받고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이렇게 설득하였다.

 

"이번에 제가 이 곳으로 오는 도중에 역수(易水)를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민물조개가 강변에 나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황새란 놈이 지나가다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깜짝 놀란 조개는 입을 오므려 황새의 주둥이를 물어 버렸습니다.

 

황새가 말했다.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바짝 말라 죽은 조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개는 조개대로 "오늘 내일 입만 벌려 주지 않으면 죽은 황새가 될 것이다" 말하며 서로 아옹다옹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지나던 어부가 이 광경을 보고 황새와 조개를 한꺼번에 망태 속에 넣고 말았습니다. 즉 그 둘을 한꺼번에 잡아 버렸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 하시는데 두 나라가 오래 버티어 백성들이 지치게 되면 강한 진나라가 어부처럼 두 나라를 한꺼번에 취하는 이득을 얻게 될까 저는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연나라를 치는 계획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소대의 이 비유를 들은 혜문왕은 과연 옳은 말이라 하여 연나라 공격계획을 중지하였다.

점입가경(漸入佳境) 뜻과 유래

 

오늘 알아볼 고사성어는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원래의 의미는 시간 또는 공간적으로 더욱 아름다워지고 좋아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경치가 좋아질 때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표현을 하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어떤 상황이나 모습을 비꼬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곤 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점입가경(漸入佳境) 뜻

 

점입가경(漸入佳境)
漸 : 점점 점, 入 : 들 입, 佳 : 아름다울 가, 境 : 지경 경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인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은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점점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유래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전한다. 고개지는 동진 시대의 화가로 서예의 왕희지와 더불어 당시 예림의 쌍벽을 이루었을 정도로 그림에 능했다. 고개지는 감자(甘蔗: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늘 가느다란 줄기 부분부터 먼저 씹어 먹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먹을 때 왜 거꾸로 먹나?" 하였다. 고개지는,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다" 하고는 태연하였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줄여서 자경(蔗境) 또는 가경(佳境)이라고도 한다.

 

고개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삼절(三絶 : 畵絶(화절), 才絶(재절), 痴絶(치절))이라 하였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재능과 그림 솜씨, 그리고 당시 풍속과 맞지 않는 특이한 말과 행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난징[南京] 와관사(瓦棺寺) 창건 때의 일이다. 난징에 있던 일단의 승려들이 와관사를 짓기 위해 헌금을 걷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궁핍하여 뜻대로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와서, "백만 전을 내겠소. 절이 완공되거든 알려 주시오"라고 하였다.

 

절이 완공되자 그 젊은이는 불당(佛堂) 벽에 유마힐(維摩詰)을 그렸다.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보시가 백만 전을 넘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가 바로 고개지였다. 

조강지처(糟糠之妻)

 

조강지처(糟糠之妻)는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노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하고 힘들 때 함께 고생한 본처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주로 불륜 드라마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의 뜻과 유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강지처(糟糠之妻) 뜻

 

조강지처(糟糠之妻)
糟 : 지게미 조, 糠 : 겨 강, 之 : 갈 지, 妻 : 아내 처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苦生)을 같이 해온 아내란 의미로 곤궁(困窮)할 때부터 간고(艱苦)를 함께 겪은 본처(本妻)를 흔히 일컬는다. 즉 가난한 살림을 함께 꾸려온 아내를 뜻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조(糟)는 지게미, 강(糠)은 쌀겨라는 뜻으로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한 본처(本妻)를 이르는 말이다. 처녀로 시집와서 여러 해를 같이 살아온 아내라면 모두 조강지처라 할 수 있다.

 

 

조강지처(糟糠之妻) 유래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보면, 후한의 창업자 광무제(光武帝)의 누님이 일찍이 과부가 되어 쓸쓸히 지내는 것을 보고 광무제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다시 시집을 보낼 생각으로 그녀의 의향을 떠보았다. 미망인이 된 광무제의 누이인 호양공주는 송홍 같은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였다.

 

광무제는 누이의 마음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맺어주기 위해 송홍과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 송홍이 공무로 편전에 들어오자 광무제는 누님을 병풍 뒤에 숨기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였는데, 이것이 인지사지가 아니겠소?" 하고 말하자 송홍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신은 가난할 때 친하였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臣聞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누님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조용한 말로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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