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狐假虎威)에 앞서

 

최근 국정농단 사건처럼 남의 권세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허세와 허풍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 있다. 대개 자신감이 없고 능력도 없어서 사기성이 농후하다.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이룬 양 거드름을 피우고, 방자함이 하늘 높을 줄 모른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리는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모든 것이 허위와 허세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만다. 날마다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는 부정과 비리이야기입니다.

 

고위 공직자 아들과 딸을 취업, 진학시키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심지어 권력자의 이름을 팔아 청탁하거나 돈을 착복하는 등의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힘 있는 자에게 빌 붙어 자신을 드러내는 썩어 빠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의 말로는 늘 처절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뜻

 

호가호위(狐假虎威)
狐 여우 호, 假 거짓 가, 虎 범 호, 威 위엄 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豪氣)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를 부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가호위(假虎威)' '가호위호(假虎威狐)'라고도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경우에 사용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유래

 

춘추 전국 시대 초기 초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나라 사신으로 왔다가 신하가된 강에에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강을이 말했다. "아닙니다. 북방 나라들이 어째 재상에 불가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혹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전체의 명이 잇었다. 네가 지금 나를 잡아먹는다면 천체의 명을 어겨 천벌을 받을 것이다. 만약 네말을 못 믿겠으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아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마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가 여우를 따라갔는데,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습니다. 사실 짐승들이 달아난 이유는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 때문입니다. 호랑이만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해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 나라들은 소해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우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이 강한 동물인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형설지공(螢雪之功)에 앞서

 

형설지공(螢雪之功)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좋은 환경 속에서 꿈을 이룬 이들도 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 끝에 꿈을 이룬 이도 많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며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지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어쩌면 공감대가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느끼고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본다면 환경 탓만 하기에는 비굴한 변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부족한 노력과 열정을 사회 현상에 기대 상쇄시키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좋은 환경을 아들딸에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어도 해야 한다. 주저앉아 버리면 일어서기가 매우 힘들다. 아파도 내 인생, 슬퍼도 내 인생, 고달파도 내 인생, 외로워도 내 인생이다.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뜻

 

형설지공(螢雪之功)
螢 반딧불이 형, 雪 눈 설, 之 갈 지, 功 공 공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단순히 '형설'이라고 한다. 또 공부하는 서재를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도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유래

 

진나라 효무제 때 차윤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실하고 학문에 뜻이 많았다. 하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낮에는 염심히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기름 살 돈이 없어 개똥벌레를 잡아 명주 주머니에 넣어 빛으로 삼고 공부하였다. 각고면려하며 공부한 끝에 훗날 벼슬이 상서랑까지 이르렀다.

 

같은 시대에 손강이란 이가 있었다. 역시 어려서부터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기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겨울이 되면 창가에 앉아 밖에 쌓인 눈에서 반사되는 빛을 등불 삼아 공부하였다. 손강은 훗날 어사대부가 되었다.  당나라 이한이 지운 <몽구>와 <진서> <차윤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윤과 손강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하였다. 어떤 한경도 불굴의 의지와 신념을 가진 자에게는 손을 들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수많은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둘째, 강철 같은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하였다. 셋째, 어쩌한 것에도 꺽이지 않는 정신을 지녔다. 넷째, 청렴하고 결백했다. 다섯째, 남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돌렸다. 여섯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실은 지난날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에게 반드시 성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에 앞서

 

▶ '그림의 떡'이란 표현이 속담인 줄 알았는데 그림의 떡 사자성어가 있네요. 오늘의 사자성어는 그림의 떡 화중지병[ 畵中之餠 ]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와 동일한 의미로 '농병황지'도 사용되어 집니다.

 

▶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실속형 인간이다. 사실적이고 분명한 일에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 결과는 실제적이면서도 확실하다. 둘째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자기 주관이 불분명하고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쏠리는 현상이 크다.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 불확실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 번째는 비실속형 인간이다. 뜬구름 잡기의 고수여서 하는 일마다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며 위태위태하다. 결과는 언제나 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세월을 축낸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전전긍긍해 봤자 소용이 없다. 능력 밖의 일은 한시라도 빨리 포기하는 편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 뜻

 

화중지병[ 畵中之餠 ]
畫 그림 화,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餠 떡 병

 

그림 속의 떡이란 뜻으로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바라만 보았지 소용(所用)이 닿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이다.
②보기만 했지 실제(實際)로 얻을 수 없음을 뜻한다.
③실속(實-)없는 말에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이다.

 

마음에는 있으나 차지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죠. 병(餠)은 우리말로 떡을 뜻합니다. 즉 있으나 마나 한 것이나 가질 수없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그림의 떡'입니다.이와 동일한 의미의 사자성어 '농병황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농병황지[弄兵潢池] 뜻

 

농병황지[弄兵潢池]
독 옹, 셈 산, 그림 화/그을 획, 떡 병

 

독장수셈과 그림의 떡이라는 뜻으로, 헛된 생각일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뜻합니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 유래

 

위나라 사람 노식에게는 노육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노육은 열 살에 고아가 되었고 전쟁으로 두 형 마저 잃었다. 원소와 공소찬이 싸울 때 유주와 기주에 흉년이 들어 홀로된 형수와 조카들을 보살폈다. 학문이 높고 덕행도 뛰어나 널리 알려졌다. 명제는 그를 등용하여 시중, 이부상서, 중서랑 드의 요직에 임명하였다.

 

하루는 명제가 노육에게 말했다. "인재를 얻고 못 얻음은 그대의 손에 달렸소. 명성만 높은 사람은 뽑지 마시요. 명성은 땅 위에 그려 놓은 떡과 같아서 먹을 수가 없소(화중지병[ 畵中之餠 ]). "명성만으로는 뛰어난 사람을 뽑기에 부족하지만, 평범한 선비는 가르침을 존경하고 선(善)을 흠모하고 찬양하여 명성을 얻습니다.

 

명성을 굳이 미워할 바는 아니옵니다. 예전에는 말로써 아뢰고 공적으로 뽑았습니다. 지금은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지 못하고 비방과 칭찬이라는 평판으로 진퇴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으며, 허와 실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명제는 노육의 말을 듣고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는 제도를 다시 시행했다고 한다.

 

명제는 명성이 단지 '그림의 떡(화중지병[ 畵中之餠 ])'이라고 하며 실제적이지 않다고 강조하였다. 노육 역시 명성만으로는 뛰어난 사람을 뽑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울러 관리의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시험은 명성과 실력을 파악 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확고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 실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파죽지세[破竹之勢]에 앞서

 

세력이 강하여 적을 향해 거침없이 쳐들어가는 의미를 가진 파죽지세[破竹之勢]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같은 출발 지점에서 똑같이 출발해도 어떤 사람은 죽죽 앞을 향해 나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출발 지점을 벗어나 어느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가다가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또 다른 사람은 출발지점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일을 추진하는 방법과 자세에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나 자세도 의지와 신념이 약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센 파도처럼 가로막는 어떠한 시련과 문제라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강인한 의지와 발산개세의 강력함은 태산도 거침없이 밀어붙일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뜻

 

파죽지세[破竹之勢]
破 깨뜨릴 파, 竹 대 죽, 之 갈 지, 勢 형세 세

 

대나무의 한끝을 갈라 내리 쪼개듯 거침없이 적을 물리치며 진군하는 기세를 이르는 말이다.

①곧 세력(勢力)이 강대(强大)하여 대적(大敵)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氣勢)
②세력(勢力)이 강(强)하여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모양(模樣)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고사성어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유래

 

위나라 사마염은 원제를 내쫓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진이라하고 무제가 되었다. 이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삼국 가운데 남은 것은 오나라였다. 무제는 두예에게 오나라를 치게 하였다. 두예는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강릉으로 진격했으며, 왕준은 수군을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진격했다. 왕홍는 수도 건업으로 쳐들어 갔다.

 

무창을 공략한 두예는 왕준과 합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향후 공격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어느 장수가 말했다.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일단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두예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마치 쪼개지는 대나무의 기세다(파죽지세[破竹之勢]). 몇 마디 쪼개지기만 하면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진다. 이런 기회를 어찌 버린단 말인가?"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 도읍인 건업으로 쳐들어가 단숨에 함락시켜 버렸다.

 

두예와 어느 장수의 생각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된다. 장수의 말은 이론상으로 맞다. 그러나 당시 군사들의 사기나 상황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 반면에 두예는 상황 판단이 정확했다. 대처하는 해결 방법도 능수능란하여 다른 장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두예처럼 자신 앞에 놓인 문제에 주죽 들지 말고 힘차게 밀고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에 앞서

 

'쓸모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버린다'는 배신의 아이콘의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내쳐지는 만큼 배신감이 들고 허무한 것은 없다. 더구나 그를 위해 헌신한 경우라면 배신감에 더해 분노까지 든다.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인간의 도리를 포기함과 다름없다.

 

신의를 배반하는 사례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심심찮게 일어난다. 특히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하다. 오늘은 아군이었다가 내쳐져 내일은 적이 되는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경우가 소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완전 넌센스인 것이다.

 

특히 정치와 재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실적이 좋으면 승진에다 특별 보너스까지 두둑이 챙겨 주다가 실적이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벗기고 내친다. 실적 앞에는 인간의 도리와 윤리, 합리적인 사고, 상식이 무너지고 만다. 샐러리맨의 비애라 할 수 있는 사자성어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인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뜻

 

토사구팽(兎死狗烹)
兎 토끼 토, 死 죽을 사, 狗 개 구, 烹 삶을 팽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라는 뜻으로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필요(必要)할 때 요긴(要緊)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苛酷)하게 버린다는 뜻이다.

②일이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일이 끝나면 돌보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정(世情)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고사성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도 보인다. 여기서 유래하여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는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유래


한나라 고조 유방은 장량, 소하와 함께 한나라 건국에 뛰어난 활약을 한 한신을 초왕에 책봉했다. 이듬해 항우 휘하의 맹장이었던 종리매가 한신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유방이 알게 되었다. 유방은 곧 한신에게 종리매를 당장 잡아 보내라고 명령했다. 종리매와 오랜 친구였던 한신은 유방의 명을 어기고 종리매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한신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유방은 참모 진평의 건의에 따라 제후들에게 명했다.

 

"제후들은 초의 땅 진에서 대기하다가 순행하는 나를 따르도록 하라." 유방의 명을 받은 한신은 위기를 느꼈지만, 큰일은 없으리라 믿고 유방의 순행에 동참하였다. 한신은 우선 종리매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한신의 말을 들은 종리매는 분노하였다.  

 

"한나라가 초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당신 밑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 한나라에 충성하겠다면 당장이라도 죽어 주겠다. 내가 죽은 후 당신도 유방에게 죽고 말 것이다." 종리매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을 찾아갔다. 한신은 곧바로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재빠른 토끼를 잡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소용이 없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적국을 격파하면 지모 많은 신하는 죽는다고 했던가." 유방은 천하의 인심이 두려워 한신을 죽이지는 않고, 회음후로 봉하여 주거를 장안으로 제한하였다.

천재일우(千載一遇)에 앞서

 

놓칠 수 없는 천금의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회는 어떻게 올까요? 기회는 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삶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는 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손을 잡아 준다. 기회가 기회를 만드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외면한다고 투덜대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기회가 자신을 피해 간다면 삶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아내를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형제를 탓하고, 친구를 탓하고 심지어 직장 동료와 지인까지 탓하게 됩니다. 참으로 유치하고 고루한 발상입니다. 마음 자체를 고치지 않는다면 기회가 영원히 외면할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와 손을 잡아 줄 것입니다. 노력의 정도에 따라 뜻하지 않은 놀라운 기회가 찾아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천재일우(千載一遇) 뜻

 

천재일우(千載一遇)
千 일천 천, 載 실을 재, 떠받들 대, 一 한 일, 遇 만날 우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機會)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동진 시대의 학자로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지낸 원굉(遠宏)이 삼국시대의 건국 명신 20명을 찬양한 글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을 남겼는데, 그 중 위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 '천재일우 현지지가회(千載一遇賢智之嘉會;현명한 군주와 지모가 뛰어난 신하가 만나는 기회는 천년에 한 번쯤이다)' 라는 일절에서 나온 말이다. 보통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말로 사용한다.

 

 

천재일우(千載一遇) 유래


원굉은 동진의 학자로 문장이 아주 뛰어났다. 원굉은 삼국 시대의 건국 명신 스무 명을 찬양한 글을 남겼는데, 이른바 <삼국명신서찬>이다. 그중 위나라 순욱에 대한 글에서 어진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기 쉽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섰다.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천년이 지나도 천리마는 한 마라리도 나오지 못한다.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삶이 통하는 길이며, 천 년에 한 번 만남은 현명한 군주와 지모가 뛰어난 신하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만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잃으면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백락은 주나라 시대에 말을 감별했다는 명인을 말한다. 순욱은 영천 사람으로 동탁은 그를 황보현의 수령으로 임명했다. 숙욱은 벼슬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가족과 함께 기주로 갔다. 원소가 기주목으로 있었다. 순욱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원소는 극진히 예우했다. 순욱은 원소가 자신이 의지할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 마음으로부터 지워 버렸다.

 

원소 곁을 떠난 순욱이 스스로 조조를 찾아 갔다. 조조는 반가이 순욱을 맞이하였다. 순욱은 조조가 스스로 위나라의 왕이 되자 이를 반대하여 조조의 분노를 샀고 자결하였다. 조조는 경후라는 시호를 내려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한 순욱을 기렸다.

 

순욱과 조조의 만남은 가히 천재일우(千載一遇)라 할 만하다.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둘의 운명인 것이다. 서로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에 앞서

 

어떤 행동 또는 사물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대충 훑어 본다는 뜻의 '주마간산(走馬看山)'이 오늘의 사자성어입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격이 꼼꼼한 사람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세심하게 살펴 제대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믿음이 가고,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습니다.

 

이와 반대로 대충 건승으로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제대로 하는 법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맡겨도 미심쩍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든 헛점이 보이고 빈축을 싸기 쉽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대충하는 것은 절대 지양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을 무능력자로 까아내리는 비효율적인 행동이어서 아니함만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뜻

 

주마간산(走馬看山)
走 달릴 주, 馬 말 마, 看 볼 간, 山 메 산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바빠서 자세(仔細)히 살펴보지 않고 대강 보고 지나감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원래는 이와 같은 뜻이 아니었으나 후대에 뜻이 변형된 관용어입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일이 몹시 바빠서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대강대강 훑어보고 지나침을 비유한 고사성어입니다. 힘차게 달리는 말 위에서는 사물을 아무리 잘 살펴보려고 해도 말이 뛰는 속도가 빨라 순간순간 스치는 모습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말에서 내려서 천천히 보면 될 텐데, 일이 몹시 바빠 그럴 수도 없으니, 달리는 말 위에서나마 대강대강이라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마간산(走馬看山) 유래에서는 이와 같은 뜻을 볼 수 없다. 후에 관용어로 쓰이면서 뜻이 덧붙거나 변한 것으로 보인다. 주마간산의 '산' 역시 대강대강 둘러보다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는 과정에서 꽃이 산으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마간산(走馬看山) 유래


당나라 시인 맹교가 지은 <등과후>라는 시가 있습니다.

 

"지난날 가난할 때는 자랑할 바가 없더니

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끝이 없더라

봄바람에 뜻을 얻어 빠르게 말을 모니

오늘 하루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

 

맹교는 벼슬을 하지 않고 시나 지으면서 청렴하게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마흔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과거를 치렀다. 기대와는 달리 과거에 떨어졌다. 5년 후인 마흔 여섯 살에갸 가까스러 합격하였다. <등가후>는 보잘것 없던 때와 과거에 급제한 후의 달라진 세상인심을 풍자한 시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은 주마간화(走馬看花 : '달리는 말에서 꽃을 본다'는 의미로 하루만에 장안의 좋은 것을 다 보았다는 뜻이다)에서 유래한 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 :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으로 후대에 인용되었다. 원래의 뜻과 달리 후대에서 인용되면서 세심하게 살펴볼 틈도 없이 대충대충 훑어보고 지나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시인 맹교가 본인의 의지가 아닌 어머니의 바람을 위해 과거를 보았더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평소 의지와는 매우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낙방하여 조롱거리가 되고 수치스러움을 겪었다.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그가 5년 후 과거에 급제한 후 읊은 시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신의 명예와 어머니의 소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고 열심히 과거 공부에 전념했을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잘 살펴 실수를 줄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축복되게 하는 방법이다.

■ 주경야독(晝耕夜讀)에 앞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문에 정진함을 비유하는 주경야독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오늘이 지나면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빠른 변화의 속도는 어느 특정분야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삶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 뒤처지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살라가려면 빠른 속도에 맞춰야 한다.

 

빠른 속도에 적응하여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방법은 공부다. 서점에는 각 분야의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진행하는 강좌들이 온라인 여기 저기에 널려 있다. 그 중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 돈도 들이지 않으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다만 의지가 없어서 안될 뿐이다.

 

삶에 있어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다.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서 책을 읽어야 한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앞서가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공부인 것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뜻

 

주경야독(晝耕夜讀)
晝 낮 주, 耕 밭 갈 경, 夜 밤 야, 讀 읽을 독

 

낮에는 농사(農事) 짓고 밤에는 공부(工夫)한다는 뜻으로, 빠쁘고 어려운 중에도 꿋꿋이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고사성어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자성어죠. 경(耕)은 ‘밭을 간다’는 뜻인데, 경작지(耕作地), 농경사회(農耕社會)와 같은 단어에 쓰입니다.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것으로, 곧 가난을 극복하며 열심히 공부한다는 의미입니다.

 

 

■ 주경야독(晝耕夜讀) 유래

 

최광은 북위 때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효백이다. 광이라는 이름은 효문제가 내렸다. 그는 집이 가난했지만 학문을 좋아하여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주경야독(晝耕夜讀)). 그는 다른 사람에게 글을 필사해 주는 일도 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문에 정진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 후 태자태부가 되었고, 개국공신에 봉해졌다. 효문제는 '효백의 재주는 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넓고 넓다.'며 효백의 학문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동물이다. 아무리 집이 가난해도 공부에 대한 강한 신념과 의지가 있다면 비록 밭을 갈지언정 밤에는 책을 읽을 수 있다. 환경이 좋아도 신념과 의지가 없다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공부의 필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책을 읽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책을 사랑하고 공부를 즐기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요? 오늘부터라도 꼭 실천해보세요.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에 뜻과 유래에 앞서

 

우물안 개구리란 뜻으로 식견이 좁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세상이 넓은 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정저지와(井底之蛙) 또는 정중지와(井中之蛙)란 사자성어를 사용하곤합니다. 둘 다 같은 뜻과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 남의 말을 멀리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말만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발전하기가 어렵다. 편견은 편견을 낳을 뿐이다. 식견이 좁은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지금보다 나은 학문을 쌓을 수 없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 뜻

 

정저지와(井底之蛙)
井 우물 정, 底 밑 저, 이룰 지, 之 갈 지, 蛙 개구리 와

 

▶ 우물 밑의 개구리란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몹시 좁은 것을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정중지와(井中之蛙)
井 우물 정,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蛙 개구리 와

 

▶ 우물안 개구리란 뜻으로 세상(世上) 물정(物情)을 너무 모름을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莊子(장자)≫ 秋水篇(추수편)에 나오는 말이다.  ≪莊子(장자)≫에는 ‘井蛙(정와)’라고만 나와 있다. ‘井庭蛙(정정와), 井中蛙(정중와), 井底蛙(정저와), 井底之蛙(정저지와)’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정중지와(井中之蛙) 유래

 

<장자>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다. 황하의 신인 하백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와 동해를 보게 되었다. 바다의 크기와 넓이가 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백이 놀라워하며 북해의 신인 약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모르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다. 비뚤어진 선비가 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서야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대와 함께 천하의 진리를 논할만 하다. 보잘 것 없는 식견을 가진 사람도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춘다면 얼마든지 바다처럼 넓은 식견을 기를 수 있다.

 

 

 

<후한서> <미원열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신나라에 마원이란 자가 있었다. 마원은 관리가 된 세 형과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감숙성에 있는 외효의 밑으로 들어갔다. 당시 공손술은 촉에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있었다. 외효는 마원을 보내어 공손술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마원은 공손술과 같은 고향이어서 공손술이 반갑게 맞아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손술은 무장한 군사들을 죽 늘어놓고 서둘러 마원을 불러들였다. 공손술은 미원을 후에 봉하고 대장군의 직위를 내리려 했다. 마원은 잠시 생각했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공순술은 예를 다하여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신변만 꾸미는 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의 인재를 도래 두랴." 마원은 돌아와서 외효에게 말했다. " 공손술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좁은 촉나라 땅에서나 뽐내는 미미한 자입니다." 외효는 공손술과 함께 할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 친밀하게 지냈다.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앞서

 

오늘의 고사성어는 배움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는 절차탁마(切磋琢磨)입니다. 학문을 하는 이유는 인격을 갈고 닦아 사람의 본분을 지키고, 예와 도리를 다함에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학문의 본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학문을 도(道)처럼 여기었다. 당연히 학문이 뛰어난 사람은 예와 충과 효에 밝았다. 익히고 배운 것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학행일치(學行一致)에 따른 것이다.

 

* 학행일치(學行一致) : 학문(배움)과 품행(행동)이 서로 일치 해야 한다. 즉 배운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의 도를 깨치고 실천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런 까닭에 도를 닦듯이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 게으로고 나태해서도 안 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스스로를 독려하고 의지와 열의를 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학문을 했다고 볼 수 없다. 학문과 덕은 수행하는 마음으로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겠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뜻

 

절차탁마(切磋琢磨)
切 끊을 절, 磋 갈 차, 琢 다듬을 탁, 磨 갈 마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음을 말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절차(切磋)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琢磨)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원래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도덕, 기예 등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수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절차탁마(切磋琢磨) 유래

 

<논어> <학이>를 보면 공자가 제자인 자공과의 문답에서 <시경>을 인용하는 부분이 있다. 위나라 무왕의 덕을 칭송한 시의 일부이다.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가난하더라도 비굴하지 않으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옳긴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느니라." 자공이 다시 물었다.

 

"<시견>에 끊고 가는 듯이 하고 쪼고 갈고 닦은 듯이 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와 같습니까? "자공아, 이제야 너와 <시경>을 논할 수 있겠구나. 이제 지나간 것을 알려 주면 다가올 것을 아는 구나." 뼈를 자느는 것을 '절(切)'이라 하고, 돌을 가는 것을 '마(摩)'라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학문을 높이 쌓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열정이 함께해야 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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